[옹기마을 편지]우리 옹기의 우월성
[옹기마을 편지]우리 옹기의 우월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2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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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옹기의 우월성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통기성(通氣性) 즉 옹기가 숨을 쉰다는 점이다. 숨 쉬는 옹기를 빚으려면 아래 3가지 조건을 반드시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옹기토 속의 미세한 모래알갱이들이다. 옹기는 일반적으로 1천200~1천230℃ 온도에서 굽는데, 자잘한 모래알갱이들은 이 정도의 온도에서는 녹지 않기 때문에 모래알갱이 사이에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숨을 쉴 수 있는 미세한 구멍들이 생긴다.

1998년 4월 24일 국립중앙과학원이 1천20 0℃에서 구워진 옹기를 전자현미경(×500)으로 관찰한 결과 결정수(結晶水)가 빠져나간 자리에 무수한 숨구멍이 생긴 사실이 증명되었다. 발효식품은 이 미세한 숨구멍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김치, 된장, 간장, 젓갈 등의 장류와 김치류는 소금으로 저장하는 염장법에 따라 옹기에 담겨 오랜 시간 동안 아주 느리게, 서서히 숨을 쉬면서 발효된다. 발효식품은 우리나라 음식의 80%를 차지하는 전통 식문화의 유산이다. 특히 전통 장류의 깊고 그윽한 맛은 빠르게 만들어지는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다. 옹기의 표면에 하얗게 피어나는 ‘소금쩍’(=소금기가 배거나 내솟아서 허옇게 엉긴 조각)은 옹기가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이다. 발효식품용 옹기로는 소금쩍이 적당히 피어나는 옹기가 좋다. 발효식품의 맛난 맛은 단백질 분해산물인 아미노산이 주로 낸다.

둘째, 옹기를 굽는 온도이다. 옹기는 옹기흙 속의 작은 모래알갱이들이 녹지 않을 정도의 온도 즉 자화되지 않은 온도(1천200~1천230℃ 정도)에서 굽는다. 여기서 ‘자화’란 흙이 자연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딱딱한 상태를 말한다. 옹기흙이 자화 상태가 되려면 가마의 온도가 1천250℃ 이상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옹기흙은 1천250℃ 이상이 되면 가마 속에서 퍼져버리므로 온도를 자화될 때까지 높일 수가 없다.

결국 옹기흙은 자화가 되지 못하는 대신 자연환원성(=토화 현상)을 갖는다. 옹기의 파편이 땅속에 묻히면 서서히 분해되어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도자기들은 1천250℃ 이상에서 굽기 때문에 영원히 흙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이 점이 옹기와 다른 도자기의 차이점이다.

셋째, 옹기의 유약이다. 옹기유약은 천연재료인 나무를 태워 생기는 나무재와 산속의 나뭇잎이 오랜 세월 썩으면서 흙으로 변한 부엽토(腐葉土)만 섞어서 만들기 때문에 어떠한 화학성분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옹기는 인체에 무해, 무독하고 ‘자연을 닮은 그릇’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와는 달리 반짝거리는 도자기의 유약에는 유리창의 주성분인 유리질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이 유리질 성분은 고온에서 녹으면서 도자기의 벽을 덮어버려 숨구멍을 막게 만든다. 하지만 옹기유약 속에는 유리질 성분이 거의 없어 유약이 녹아도 숨구멍을 막지 않으므로 옹기가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다른 도자기들과 다른 점이다.

말하자면, 옹기는 옹기토 속의 작은 모래알갱이, 자화되기 전의 가마 온도, 유리질 성분이 거의 없는 옹기유약, 이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숨을 쉬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옹기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우리 조상들은 흙속의 작은 모래알갱이, 나무재와 부엽토, 적당한 온도를 활용해 숨을 쉬는, 자연친화적 옹기를 만들 수 있었다. 너무나 과학적인 원리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조상들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위대한 예술품인 옹기! 이러한 옹기의 전통적인 맥을 잇는 일은 옹기를 만드는 장인들만의 몫이 아니라, 오늘을 같이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소명일 것이다.

김미옥 울산옹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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