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의 죽음; 야만의 사회
설리의 죽음; 야만의 사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2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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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발 없는 새가 끊임없이 날아야 하듯 절망감을 느끼면서. 아니 시원한 산들바람이 부는 언덕에서 나신(裸身)으로 자유를 만끽했을지도 모른다. 가슴에 뭉쳐진 응어리는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을 것이다. ‘꺼이 꺼이.’ 지극한 슬픔은 눈물마저 삼킨다. 그녀는 모든 것을 놓고 머나먼 어둠의 길로 떠났다. 그곳이 환한 출구가 아니었을까.

설리가 죽었다. 그녀가 죽던 날 오후, 후배가 그 소식을 전했다. 후배기자들이 몇 마디씩 이야기를 했다. 나는 설리에게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죽었다는 소리도 한 귀로 흘렸다. 그날 밤 9시 뉴스에서 그녀의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제서야 그녀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다음날 회사 후배들에게 “설리가 죽었다더라” 했더니, “부장님, 어제 이야기할 때 뭐했어요?”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설리는 나에겐 그냥 잘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를 빠른 템포로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의 한 가수일 뿐이었다.

오후 퇴근 길, 운전석 앞으로 펼쳐진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홀렸을까? 갑자기 ‘설리의 죽음’이 무겁게 다가왔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오버랩 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순간 빨간 립스틱을 바른 하얀 얼굴의 설리가 환한 빛 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한여름의 빨간 장미꽃같이 화사했던, 길거리의 플라타너스처럼 싱그러웠던 그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그녀의 죽음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녀의 죽음에 무관심했던 게 미안했다. 가슴이 아파 길가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그냥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핫팬츠를 입고, 브래지어가 싫다고 해서? 너무 이뻐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산다고 해서? 자기주장이 강해서? 무슨 이유에서든 그녀는 악플에 시달렸고, 이 악플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설리는 SNS를 통해 “아프다고 말해도, 힘들다고 해도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12살 어린나이에 아역으로 데뷔해 화려한 삶을 살아온 그녀이기에 그녀의 아픔은 가족에게, 대중에게 생소했을 수도 있다. 아니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녀는 단지 브래지어가 불편해서 착용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무한한 욕설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브래지어를 ‘액세서리’라 표현했다. 액세서리는 개인의 취향이다. 그녀는 여성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스물 몇 살의 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더워서 브래지어를 벗는다. 영혜는 어느 한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얼굴을 본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행했던 혹은 당했던 동물적인 공격성들에 대한 성찰이었다. 이후 그녀는 폭력과 공격성에 대해 완고히 대항한다. 육식을 거부하며 그녀 자체는 식물성 인간이 돼 간다. 영혜는 젖가슴을 사랑한다고 했다. 젖가슴은 공격적인 흉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게는 가족이지만 그녀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사회에게 식물성 인간으로 당당히 맞선다. 소설에선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시선은 현실 너머에 있었다.

야만(野蠻)이란 문화적으로 우월한 사회가 문화적으로 열등한 사회를 부를 때 쓰는 단어다. 개인을 가리킬 때 야만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라는 사회가 타인들의 사회를 부를 때 야만이라 한다. 젖가슴을 드러낸 아프리카의 한 부족을 우리가 야만이라 부를 때, 그들도 우리를 야만이라 부를 수 있다. 야만은 상대적이다. 설리의 죽음에서 우리가 우리의 사회를 비판하지 못할 때 우리는 야만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한 가지, 여성에게 브래지어를 강요하는 사회라면 야만의 사회인 것만은 확실하다.

정인준 취재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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