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물과 같은 억압과 속박의 세계를 살고 있다. 계속된 삶의 좌절과 슬픔에 때론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인간은 굴복하지 않고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한다.
박산하 시인의 두번째 시집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에는 이 같은 어두운 세상에 저항하는 시들이 주를 이룬다.
표제작을 비롯해 수록된 50여편의 시는 개념화되지 않은 날 것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거나 변화무쌍한 삶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표제작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현대의 결혼 문화를 비판한다.
“아들의 동반이 되어가는 며느리/딸이 없으니 딸보다 예쁜데/처음 인사하러 올 때/어디 사는 것 외는 아무것도 몰랐다/아들이 좋아한다는데/사소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그냥 그 모습/눈 맑은 아가씨가 내 가족이/된다는데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중에서)”
나이, 집안, 학벌 등 온갖 조건을 따지는 대신 집안에 어여쁜 새 식구를 들일 수 있다는 그 자체에 감사함을 전하는 시다.
박 시인은 “아들이 결혼을 하고 몇개월 후 며느리가 전화해 ‘어머님, 고맙습니다. 저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라고 말하더라”며 “요즘은 결혼의 본질이 무색해 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이 싫어 행했던 일들이 좋은 사람을 맞이하게끔 했고 며느리의 말에 영감을 받아 이 시를 쓰게 됐다”고 표제작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시인의 작품 외에도 책에는 황정산 시인이 쓴 해설 ‘비극적 세계 인식과 소리들의 세상’이 실렸다.
황 시인은 “소리에 집중하며 소리를 시로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소리는 모든 개념에 저항하고 시인은 이 소리들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시인처럼 누군가 이 소리를 지키고 있어 아직 세상은 어둠이 완전히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평했다.
박산하 시인은 제1회 천강문학상 수필 부문 은상, 제5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2014 서정과 현실 신인작품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수필집 ‘술잔을 걸어놓고’, 시집 ‘고니의 물갈퀴를 빌려 쓰다’ 등이 있으며 현재 울산문인협회, 울산시인협회, ‘시목(詩木)’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보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