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수두룩한 교육현장의 日帝 잔재
아직도 수두룩한 교육현장의 日帝 잔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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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란에서도 몇 차례 제기한 바 있는 문제가 사실로 드러나 우려를 키운다. 울산시교육청 관내 일선학교 현장에 아직도 일제(日帝) 때의 잔재가 적잖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교육당국이 아니라 한 학부모단체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교장을 비롯한 학교행정책임자 다수의 역사의식 부재와 무관심, 교육당국의 보여주기식 행정과 적당주의 관행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특히 ‘3·1 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회 있을 때마다 내세우면서도 교육현장의 일제 잔재를 속 시원히 짚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 시교육청은 조직체계 어디에 고장이 나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조사를 진행한 주체는 ‘교육희망 울산학부모회’(이하 ‘울산학부모회’)라는 진보성향의 학부모단체다. 울산학부모회는 지난 9월 한 달간 울산지역 243개 학교(초등 119, 중학 63, 고등 57, 특수 4)의 교표(校標=학교를 상징하는 무늬를 새긴 휘장), 교화(校花), 교목(校木), 교가(校歌)를 모두 조사했다며 그 결과를 22일 기자회견에서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자 일본 해상자위대의 깃발로도 쓰이는 ‘욱일기(旭日旗)’를 연상시키는 교표를 3개 초등학교가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전하초등학교는 ‘변경’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 잔재가 교화나 교목에 남아있는 학교는 개교 시기가 일제강점기인 학교가 대부분으로 학교 관계자들은 채택의 배경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해서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조사 결과 무려 30개나 되는 학교가 ‘가이즈카(kaizuka) 향나무’(=일본에서 원예용으로 들여온 향나무의 변종)를 교목으로 삼고 있었다. 이 나무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식민통치를 알리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기념식수로 심은 왜색 짙은 나무다. 이밖에 12개 학교는 일본왕실을 상징하고 욱일기 모양에도 스며든 국화를 교화로 삼고 있었다. 일본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벚꽃과 벚나무는 4개 학교, 일제강점기에 국내에 들여온 ‘히말라야시다(雪松)’는 2개 학교에서 교화나 교목으로 삼고 있었다. 또 친일(親日)인사로 분류된 박관수와 정인섭이 노랫말을 쓴 교가를 여전히 부르는 학교는 3곳으로 드러났다.

울산시교육청이 조사해서 공식 발표한 일제 흔적의 숫자나 내용에 비하면 대단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울산학부모회처럼 투철한 문제의식의 바탕 위에 열과 성을 다해서 접근하면 그와 같은 풍성한 수확은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시교육청과 교육지원청 관계자, 일선학교의 교장·교감이 민족의식, 역사의식, 문제의식을 제대로 지니지 못하고 있다면…?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을 아무리 떠올리고 느낌표를 띄워 보았자 만사휴의(萬事休矣)로 귀결되지 않을까?

학부모회 관계자는 “학생들의 배움터 안에서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역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으로 조사에 나섰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다. 지적받은 학교들도 일제 잔재를 걷어내는 일에 ‘절박한 심경으로’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시교육청도 다짐한 것이 있다.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공동체가 자발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것이다. 빈말이 아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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