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새가 함께한 ‘태화강국가정원 선포식’
뭇 새가 함께한 ‘태화강국가정원 선포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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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태화강국가정원 선포식’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함께했다. 산림청에서 ‘태화강국가정원’이 지정되었음을 정식 통보받은 날로부터 백일에서 하루 모자라는 구십구 일째 되던 날 선포식을 거행했다. 애기도 백일이면 엄마와 함께 백일잔치라는 나들이에 나선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축하와 환영을 받는다. 태화강국가정원도 탄생한 지 백일을 맞이했으니 그 선포식 정서도 다르지 않았다. 백일 된 정원을 선보이는 선포식의 팡파르는 건강한 아이의 울음소리처럼 힘이 있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구십구 일을 준비한 총책임자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날씨는 딴전을 피웠다. 그날 가을비는 초상집 풍악과도 같았고 총 강수량은 33.8mm를 기록했다.

7월 12일, 산림청으로부터 ‘태화강국가정원 지정’ 소식을 정식으로 통보받았다. 그날 넓내 삼형제바위에서 태화루 용두바위까지 태화강에는 민물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 왜가리, 파랑새, 뻐꾸기, 꾀꼬리, 제비 등 텃새에다 여름철새까지 32종 총 6천304마리의 뭇 새가 그 소리를 듣고 날아올랐다. 둥지에서 어미를 기다리던 앙증스런 백로 어린새끼들도 지정 통보 소식에 노란 부리를 힘차게 벌리며 어미새를 맞이했다.

10월 15일, 해가 뜨기 전 여섯 시 십칠 분경 삼호대숲에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왔다. 6개월 전 친숙하게 듣던 소리였다. 이윽고 그들이 날아서 나오는 모습을 이날 처음 보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울산을 찾아온 진객 떼까마귀였다. 문득, 이런 시구와 노랫말이 떠올랐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정현종의 ‘방문객’)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내 가슴 너무 떨렸어요/ 그때 이미 예감했죠/ 사랑에 빠질 것을/ 그대의 몸짓/ 그대의 미소/ 다정스런 그대 목소리/ 나 어떡해요/ 숨이 멎을 것 같아/ 그대에게 빠져버렸어요/ 하루 온 종일/ 그대 생각뿐이죠/ 내일 역시도/ 그리 보낼 거예요/ 손 내밀어 잡아주세요/ 이런 내 사랑/ 받아주세요”(장윤정의 ‘첫사랑’)

10일부터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15일, ‘태화강국가정원 선포식’을 사흘 앞두고 날아든 ‘반가운 방문자’ 떼까마귀를 만났다. 그 즉시 떠오른 것이 앞서 언급한 시구와 노랫말이었다. 10월 18일, 해뜨기 전 여섯 시경부터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하던 가을비는 주관자의 마음을 외면한 채 점점 더 굵기를 더해 갔다. 하루 종일 쉼 없이 내렸다. 선포식은 결국 빗속에서 치러야 했다.

시월의 빗줄기는 남아있는 백로들의 이소 시간을 늦추었다. 뭇 새들의 날갯짓을 멈추게 하고 입도 굳게 닫히게 했다. 태화강국가정원도 조용했다. 떼까마귀 역시 울산 생활 사흘째 처음 경험한 것이 비였다. 선포식 날 아침 홍머리오리, 뿔논병아리, 쇠오리, 원앙, 떼까마귀 등 18종 552마리가 범서대교에서 국가정원을 품은 태화교 구간 사이에서 관찰된 ‘뭇 새’였다. 두꺼비 두 마리도 기어 다녔다.

태화강국가정원 선포식 잔치는 ‘2019 처용문화제’,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와 함께 시작됐다. 선포식과 함께한 행사들의 공통분모는 물이었다. 태화강국가정원 역시 물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선포식 날에 때맞추어 내린 비의 상징적 의미를 새삼 음미해봄직하다. 태화강국가정원은 사실 산지(山地)·육지(陸地)정원이 아닌 습지(濕地)정원이다. 이날 온종일 내린 비는 기쁨의 비, 축복의 비가 아니었을까.

태화강국가정원 선포식 잔치는 끝났다. 이제부터 태화강국가정원을 찾는 것은 꾸밈이 아닌 자연을 찾는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갈대밭, 억새밭, 동남참게, 고라니, 꿩, 수달, 너구리, 삵이 공존하는 곳이 태화강국가정원이다. 이미 태화강국가정원은 도심 속 정원, 강가 정원이라는 차별화로 시작됐다. 인위적 꾸밈을 일반화·보편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어느 도시에서 이런 자연생태를 볼 수 있겠는가. 오직 태화강국가정원에서만 접할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습지정원은 홍수가 닥치면 자연스레 물에 잠기고, 물이 빠지면 다시 드러난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 그대로로 놓아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연을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변형시키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홍수가 지워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유행에 맞추어 꾸미는 알밤 같은 정원이 아니라 알전구를 넣고 기워서 신는 ‘납자(衲子)양말’ 같은 정원이어야 한다. 차별성이 돋보이게 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제 발로 찾아오게 하는 것은 자연에 인문학의 옷을 입힐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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