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이들
낯익은 이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1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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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쯤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그 친구와 나는 열다섯 살, 중학교 2학년 때 만났다. 다른 두 친구와 더불어 넷이 친구로 지냈다. 이후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에 다녔다. 소식이 끊길 뻔했는데 지금껏 만나는 사이가 된 것은 오롯이 친구 덕분이다. 친구는 간헐적이지만 연락을 늘 먼저 한다. 잊을만하면 전화가 온다. 액정 화면에 친구의 이름이 뜨면 왠지 뜨끔하다. 지난번 먼저 전화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까닭이다. 짐짓 미안한 마음을 누르려 다른 때보다 목소리 톤을 높인다. 아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친구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질 무렵 우리는 처음 만났던 그 시절, 서로 낯익히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친구가 보낸 청첩장에는 신랑과 신부가 소곳한 모습으로 손을 마주잡은 장면이었다. 친구의 아들 모습에서 제 엄마를 닮은 넉넉함이 배어 나오는 것 같아 그저 좋았다. 친구를 볼 생각에 서둘러 차표를 예매했다. 친구 덕분에 다른 한 명의 친구와도 연락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설레는 일이 있을까.

아침부터 서둘러 온 덕분에 예식 시각까지는 제법 남은 상태였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곳은 가끔 뉴스에도 나오는 으리으리한(?) 교회, 서울 한복판에 우뚝 선 교회 건물에 들어서자 거리의 소음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만다. 세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그들만의 요새가 되어버린 작금의 종교 시설을 상징하는 것 같아 약간 씁쓸했다. 어쨌든 축하하러 간 자리,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예식을 치르는 곳은 교회 부속 건물처럼 보였다. 로비를 지나 2층 채플실 복도로 들어섰다. 번잡스러운 예식장과는 달리 한산한 모습이었다. 부조금을 받는 자리도 아직 빈 상태였다. 긴 시간 버스를 타느라 풀어진 매무새를 정리할 겸 화장실을 먼저 찾았다. 거울 속 내 얼굴이 타인처럼 낯설다. 수십 년을 살다 온 서울도 마찬가지. 낯익던 곳이 낯선 곳으로 변하는 것은 아마 시간과 마음 탓이리라.

예식을 치르는 홀로 들어서니 친구가 멀리 보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친구는 연단 아래에서 사람들과 뭔가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멀찍이 서서 잠시 지켜봤다. 여전한 친구의 모습에 반가움이 왈칵 나왔다. 친구에게 다가가 아는 체를 했다. 손을 맞잡은 우리의 환한 웃음과 반가운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번에 결혼하는 친구 아들은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모습이다. 잘 커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내게 친구 아들은 예전에 뵌 적이, 낯이 익다는 말을 했다. 그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지 문득 궁금했지만 긴 이야기를 나눌 상황은 아닌지라 웃음으로 답했다.

로비가 점점 사람들로 가득 찰 무렵, 나는 예식홀 의자에 앉아 곧 시작할 예식을 기다렸다. 예식 순서는 기독교 예배 형식, 기도와 찬양과 축하 의식이 적절히 섞여 나쁘지 않다. 예식홀 의자로 다가오는 목소리에 얼굴을 돌렸다. 이번에 연락이 되어 만나는 친구의 목소리는 왜 이리 친근한지, 인사를 나누는 새 세월과 시간은 금세 멀리 달아난다. 십 수 년이 넘어 만나도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시간이 기억으로 쌓인 덕분이다. 예식을 지켜보는 내내 우리는 소곤대며 지난 이야기를 했다. 함께 밥을 먹으며 계속하던 이야기는 커피점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못 봤는데도 전혀 어색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은 사이, 금세 시간의 벽을 뛰어넘는 우리는 낯익은 이들이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못다 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우리가 함께한 그 시절, 낯익은 이들을 끄집어내는 일은 당연한 차례였다. 친구는 내가 머물 곳으로 손수 차를 몰아 데려다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집으로 내려오기 전 주말 우리 셋은 또다시 만났다. 예식을 치른 후의 홀가분함이 더해 이야기꽃은 더욱 환하고 크게 피었다. 남편이 아파 누운 지 오 년, 그 가운데 예식을 치렀으니 그 속이 어땠으랴. 기도와 절제로 다진 친구의 의젓함에서 무한 긍정적이었던 옛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친구들과 헤어져 오는 귀갓길,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은 그동안 수없이 보던 그 모습이었다. 그 낯익은 내 모습을 보며 빙긋 소리 없는 웃음을 날렸다. 비록 사는 곳이 다르고, 통화는 많이 하지 못하지만 내게 그들은 내게 영원한 낯익은 이들로 남으리.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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