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도서관,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으면 해요”
“미래의 도서관,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으면 해요”
  • 김정주
  • 승인 2019.10.1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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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가족사 연구로 박사학위 받은 한복희 동부도서관장
한복희 울산 동부도서관장.
한복희 울산 동부도서관장.


‘알렉산드리아도서관’ 외벽 한글 보고 놀라


“처음 보았을 때 깜짝 놀랐어요. 이 도서관 건물 외벽 왼쪽 모서리를 자세히 보세요. ‘월’이란 우리 한글, 큰 글씨로 새겨져 있잖아요. 물론 지도교수님의 저서 속 사진이긴 하지만….”

지난 5일 오전, 중구 문화의 거리 한켠 2층에 자리잡은 극단 푸른가시 소극장. ‘북 토크쇼 꽃자리’의 초청으로 특강을 막 시작한 한복희 동부도서관장(58)이 화면에 비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사진을 가리키며 객석의 동의를 구했다. 강의 주제는 ‘나와 책, 그리고 도서관’.

자세히 보니 빈말이 아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라면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당대의 문화와 학문의 요람이었으나 숱한 전란에 휘말리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세계 최고(最古)의 도서관. 다만 한 관장이 보여준 사진 속의 현대식 도서관은 유네스코와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옛 도서관 자리 근처에 새로 지어져 17년 전, 2002년 10월 16일에 문을 연 현재의 도서관이다. 재건축 당시 건물 외벽에는 지구촌에 존재하는 120개 문자가 음각으로 새겨졌고, 우리 한글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글씨로 지금도 맵시를 뽐내고 있다.

‘지도교수’는 한 관장의 석사학위 논문을 지도하면서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해준 최정태 전 부산대 문헌정보과 교수를 가리킨다. <지상의 위대한 도서관>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최정태의 세계 도서관 순례기>란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날 특강을 안내하던 구경영 대표(‘북 토크쇼 꽃자리’)의 입으로 따끈따끈한 뉴스가 하나 전해졌다. 한복희 관장이 가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객석에서는 한순간 축하박수가 쏟아졌다.

동부도서관에 게시된 ‘이달의 독립운동가’ 포스터.
동부도서관에 게시된 ‘이달의 독립운동가’ 포스터.

 


안중근 가족생애사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학위논문 제목은 <안중근 생애에 나타난 역경과 가족 레질리언스(resilience) 및 가족 생애사 연구>. 그런데 도서관과 안중근 의사(1879~1910)가 무슨 연관? 알고 보면 전혀 무관치가 않다. 보물 제569호로 지정된 안 의사 유묵(遺墨) 26점 중에는 순국 1개월을 앞두고 옥중에서 썼다는 붓글씨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도 있지 않은가. 논어(論語)에서 인용한 이 문구는 ‘하루라도 책을 안 읽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부끄러워요. 1년은 더 공부했어야 했는데….” 학위 취득 과정에 대한 조심스런 첫말이다. 노인성 질환에 시달리는 팔순 노모(89)가 살아계실 때 꼭 이루고 싶다는 조바심이 미완의 그릇을 만들게 했다는 것. “준비는 2, 3년 전부터 해 왔죠. 하지만 완성도를 생각하면….”

학위논문 지도교수는 울산대학교 아동가정복지학과 정민자 교수. “참 자상하고 친절하게 지도해 주셨죠. 현지답사 때는 여러 번 동행도 해 주시고.”

사실 도서관장 직을 놓은 것도 아닌데 역사의 현장인 중국 하얼빈에서 러시아 연해주까지 샅샅이 훑어본다는 건 여간 마음을 다잡지 않고서는 감당하기가 힘든 일.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는 긍지 하나만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15주나 다녀왔죠. 조퇴한 다음 KTX를 타고 서울로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밤 12시일 때가 허다했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 15가지를 알고 난 뒤로는 그에 대한 외경심이 싹텄다. “안중근 의사는 진정한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울분도 치솟았다. “참으로 가슴이 아렸답니다.” 그런 느낌은 하얼빈의 ‘안중근 기념관’이나 일본군 731부대, 연해주의 독립운동가 ‘페치카 최재형’ 고택을 답사했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사학위 논문집 표지.
박사학위 논문집 표지.

 


안 의사 자녀 2명 친일 기울어 가슴 아파

그런데 이번에 파고든 주제는 ‘도서관’이 아닌 ‘안 의사 가족의 생애사’. 다수의 연구자들이 안 의사의 의로운 생애에만 눈길을 돌리고 그 가족들의 은밀한 내면 얘기는 곁눈질만 해온 사실이 가슴 아팠던 것일까? ‘나라의 영웅’이 아닌 ‘아버지’ 안중근과 그의 가족 얘기에 접근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쨌든 한복희 관장의 노력은 작지만 유의미한 결론을 얻기에 이른다. “차남 안준생, 장남 안호생을 제외한 가족 대부분이 독립운동을 위해 열정을 바친 가문이었습니다. 안 의사의 부친 안태훈 선생, 모친 조마리아 여사를 비롯해 국가서훈을 받은 가족 수가 열다섯을 헤아린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겠죠.”

한 관장은 학위논문 결론의 대부분을 안중근 가족사의 긍정적 측면을 해부하는 데 할애했다. 그러면서도 애틋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안 의사의 둘째아들 준생 씨의 운명이 너무도 기구했기 때문은 아닐까. 한 관장은 이렇게 반문한다. “흠을 찾는다면 둘째 아들 준생과 외동딸 현생 부부가 친일로 기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수 있을까요?” (안 의사는 2남 1녀를 두었으나 큰아들은 어릴 때 이승을 등졌다.)

한 연구자의 표현을 빌려보자. “일본의 탄압과 감시로 안중근 일가는 헐벗고 굶주려야 했다. 안준생은 커서도 직장을 구할 수 없어 거지처럼 살았다.…준생은 일본 경찰에 의해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와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분키치 앞에 끌려오고 거기서 변절과 사죄를 요구받는다.…협박에 굴복한 준생은 이토 분키치에게 아버지의 잘못을 머리 숙여 사죄하고 일본 곳곳에서도 공개사죄를 계속한다. 나중에는 미나미 지로 조선총독의 양아들이 되어 용돈을 받으며 살다가 그 돈으로 약국을 차리기도 한다.…”

역사소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이태진-조동성 원작)의 저자 김성민은 ‘안준생의 항변’이라며 이런 글을 남긴다. “호부견자(虎父犬子)라더군요. 호랑이 아비에 개 같은 자식. 하하, 그럼 나더러 어쩌란 말입니까?…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죠. 나는 나라의 재앙이지만 내 가족에겐 영웅입니다.”



안중근 의사,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때마침 오는 26일은 110년 전(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날이다. 안 의사는 이듬해(1910)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32세로 짧지만 굵었던 생을 마감하고 만다. 우리 정부는 ‘10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안중근 의사를 선정했다.

한복희 관장은 동부도서관 1층 이용자의 왕래가 잦은 곳에 포스터를 붙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적의 심장을 쏜 독립운동가’란 글귀와 어록, 안 의사의 행적이 간추려 적힌 포스터다. 다음은 그 속에 적힌 안 의사의 어록.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한 관장이 태어난 곳은 경북 경산. 그러나 청소년기는 대부분 부산에서 보냈다. 특히 고등학교(부산진여상) 시절에는 부산시내 고교연합 독서모임 ‘상록회’에서 의욕적으로 활동한 게 도서관 근무를 천직으로 삼게 되는 계기가 됐는지도 모른다. 부산여대 도서관과에 운명처럼 입학하게 된 것. 그때가 1983년 2월.

다시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1989.2)를 거쳐 부산대 교육대학원(2004.2, 사서교육 전공)을 졸업하면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지난 8월 가정학 박사 학위를 안고 울산대 일반대학원(아동가정복지학 전공)을 마치게 됐다.

지난 11일 창원시 ‘지혜의 바다 도서관’을 방문한 한복희 관장(가운데) 일행.
지난 11일 창원시 ‘지혜의 바다 도서관’을 방문한 한복희 관장(가운데) 일행.

 

독서모임 ‘이그노라무스’ 회장직도 맡아

‘직장인 한복희’의 이력서는 온통 ‘도서관’으로 채워져 있다. 창원·김해도서관 개관요원. 울산 남부·동부도서관 개관요원을 거쳐 중부·남부도서관에서도 사서·열람과장 직무를 맡아 도서관 업무와 씨름해야 했고 이 일은 울주도서관장이 된 뒤에도 변함이 없었다. 특히 울주도서관장 때 증축과 리모델링 공사를 멋지게 마무리 지은 일은 지금도 뿌듯한 보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틈새에 서기관 승진의 기회도 주어졌다. 2017년 1월 1일자로 지방서기관 발령이 났던 것. 지난해에는 7개월간 울산시교육청 정책관실에서 정책조정서기관 역할도 거뜬히 해냈다.

도서관과 직장인으로서 연을 맺은 시기는 1983년 9월15일 경상남도교육청 사서직 공채에서 합격한 뒤 창원도서관에서 근무하기 시작할 무렵. 그로부터 어느덧 만 36년을 넘긴 셈이다. 그러고 보니 정년이 가까이 다가온다. 2021년 12월 퇴임이면 앞으로 2년 2개월밖에 안 남은 것.

요즘은 우리의 도서관이 어떤 모습으로 시민들 앞에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구상으로 새로운 의욕이 샘솟는다. 지난 11일 평소에 알고 지내던 교장선샘님들과 창원의 ‘지혜의 바다’ 도서관을 둘러보고 온 것도 그 일과 무관하지 않다.

도서관 생활 삼십 수 년 동안 쌓은 도서관 모델에 대한 얘기도 듣고 싶었다. ‘개인 스탠드가 갖춰진 독서실’과 함께 ‘복합문화공간’이란 답이 돌아왔다. “도서관이라고 책만 읽고 가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마음의 곳간을 채우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서로 나누면서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그런 공간 말이죠.”

‘블루 마운틴’이라 부르던 부산 청산학원에서 만나 대학입시를 겨루던 동갑내기 고교생이었다가 천생배필이 된 김천호 씨(58)와의 사이에 두 따님을 두었다. 여행과 클래식을 중심으로 한 음악감상이 취미. 울산방송 선우석 부장이 수년째 총무를 맡아 이끌어 오는 독서모임 이그노라무스(Ignoramus, 회원 12명)의 회장직을 올해 초부터 맡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제공=울산동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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