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어린 시절 “~땍”이라며 어머니를 부르던 순박한 이웃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이들이 제법 많을 것이다. “다 큰 놈이 오줌을 싼다”는 야단을 피해가며, 키를 쓴 채 마을을 돌던 오줌싸개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른 중반, 아니면 마흔, 모두 몇 살이나 됐을까? 누군가는 유난히 소금을 잘 퍼주던 옆집 ‘~땍’에게 지금도 고마움을 느끼며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지나 않은지.
그렇다면, 이런 풋풋한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아마도 못내 허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최근 울산에서 이웃간 불화를 보여주는 사례를 자주 보도했다.
동구지역 한 아파트는 이웃의 통행을 차단하는 철제접이문을 놓고 설치와 철거를 반복하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아파트 1·2동 주민들이 통행소음을 이유로 3·5·6동과 연결되는 소방도로에 철제접이문을 설치한 것이다. 10여년전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로 갈라져 있을 때부터 빚어진 갈등이다.
북구도 마찬가지다. 인근 주민들의 통행소음을 이유로 아파트 내에 철제문을 설치하고 그 위로는 군사분계선마냥 철조망까지 쳐놨던 모 아파트. 특히 한 주택가에서는 출입구 확장에 필요한 땅을 팔지 않는다며 이웃집 담벼락과 접해있는 자신의 땅에 대형 화단을 설치하기도 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거주자우선주차제를 시행하고 있는 남구와 중구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이같은 울산에 나타난 문제의 ‘철제접이문과 화단.’ 모두 ‘우리(이웃)’는 없고 ‘나’만이 소중한 사회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한 입주민은 “어른들이 저지른 일 때문에 아이들도 동마다 편을 가르고 있다”며 걱정했다. 울산의 아이들에게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멋대로 뺏지나 않을지 염려하던 목소리다.
/ 권승혁 기자 편집국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