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파수꾼]안전교육은 자발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안전파수꾼]안전교육은 자발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1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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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회사 프로그램에 따라 태어난 지 만 4년이 된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가 듀폰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유치원에 등록하기 이른 시기라 또래아이들과 마당에서 신나게 뛰놀던 애가 돌연 미국 교육기관인 프리스쿨에 다니게 되었다. 한국말도 아직 서툰 아이가 전혀 다른 언어 환경에서 엄청 난감했을 텐데 그런대로 씩씩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선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가만히 들어보니 자기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는 방법과 일상생활에서의 안전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교실 바닥에 둘러 앉아있는 친구들 앞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기, 부모 이름 쓰기, 낯선 어른이 “같이 가자”며 손을 잡으려할 때 “싫어”라고 크게 소리지르기 등. 그리고 그런 상황을 노래와 율동으로 몸에 익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와 많은 문화적인 차이를 느꼈다.

한국으로 돌아와 몇몇 친구 가족들과 대전엑스포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탓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방송에서 우리 아이 이름이 나오는 것 같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주변 사람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둘러보니 정말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재차 방송에 귀를 기울이니 아이가 보호자를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황망해서 달려가 보니 아이는 보호소에서 또래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조그만 손을 꼭 잡고 돌아오면서 물어보니 “호기심을 끄는 것들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녔는데 어느 순간에 엄마 아빠가 보이지 않아 겁이 덜컥 났다”라는 거다. 깜짝 놀라 주변을 보니 마침 ‘폴리스’가 보여 자기 이름을 말하고 “‘엄마 아빠를 찾아달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아줌마들은 한결같이 그 혼잡한 곳에서 아이가 엄마를 찾는 침착함을 칭찬했지만 아이는 프리스쿨에서 배운 대로 실천하고 행동한 것이다.

듀폰 울산공장에서는 매년 5월을 전기안전의 달로 정하고, 전기의 편리함 뒤에 가려져있는 위험성을 홍보하는 다양한 안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중 직원과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전기안전에 관한 포스터그리기’가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 이상 지속된 장수 프로그램이다. 듀폰에 다니는 아빠 또는 엄마가 어린 자녀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전기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이 그린 포스터를 제출하면 기념품은 물론 가족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일과 후에 하는 행사라 조금은 귀찮게 여겨질 수 있는 과정인데도 해마다 전 직원의 30% 정도 참여한다. 작품이 50여 건 정도 모이는 걸 보면 쉽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는 ‘안전’을 재미와 실속으로 잘 승화시킨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이렇게 집에서 직장에서 부모와 함께 ‘안전’을 이야기하며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회에 진출하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산업안전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울산에 있는 많은 회사들부터 가족이 함께하는 안전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전국으로 널리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의 교육체계에서는 보통 16년 이상의 학교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율은 근로자 10만명당 11명 정도로 EU 평균의 5배에 달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안전교육은 ‘위험요인들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고 한다. 교육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지난 1~2년 사이에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서 텔레비젼이나 신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안전의식을 높이는 광고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 직장 그리고 사회에서 진행하는 여러 안전교육들을 큰 틀 안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안전교육의 내용과 방향성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안전교육을 수행하는 측에서 안전교육의 실효성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안전교육은 자발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동기부여’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안전은 곧 실천이다.

최준환 듀폰코리아(주) 이사, 전기안전기술사·산업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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