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안된 ‘교통특례법 위헌’ 논란
준비안된 ‘교통특례법 위헌’ 논란
  • 이주복 기자
  • 승인 2009.03.0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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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헌법재판소가 보험 가입자의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4조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지만 법무부 등 관련 기관이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해 애꿎은 국민만 혼란을 겪고 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결과를 사전에 알 수는 없지만 이번 사안은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관련 부처가 헌재가 위헌 결정을 했을 경우를 대비해 사전에 관련 대책과 대국민 홍보 방안을 마련해 국민의 혼란을 최소화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오후 2시30분께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자 이 법의 주무부서인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그제야 대책 마련에 나서느라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나자마자 중상해의 기준과 이를 최종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인지, 어느 시점부터 이 결정이 적용될 것인지 등을 놓고 혼선이 빚어졌다. 결국 대검찰청은 이날 저녁 전국 검찰청에 “위헌 결정이 선고일부터 효력이 발생하므로 현재 계속 중인 사건은 결정의 효력이 미친다는 일부 의견도 있고 중상해의 개념에 논란의 여지가 있으므로 이런 사건의 처리를 미루라”고 긴급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교통사고의 1차 수사를 담당하는 전국의 일선 경찰서에서 교통사고 처리 업무가 사실상 마비되기도 했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혼란이 빚어지고 언론의 지적이 이어지자 실무 협의를 열어 27일 오후 6시께 `교특법 위헌 결정에 따른 업무처리 지침을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이 사이 각 경찰서와 보험사엔 헌재 결정을 둘러싸고 궁금한 점을 묻는 전화가 폭주했지만 문의를 받는 쪽 역시 하루가 넘도록 검찰의 입만 쳐다볼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날 대검찰청이 밝힌 중상해는 교통사고로 생명유지에 불가결한 뇌 또는 주요 장기에 중대한 손상을 입거나 팔다리가 절단되는 등 신체 중요 부분이 상실된 경우, 시각ㆍ청각ㆍ언어ㆍ생식기능 등 신체 기능이 영구적으로 상실된 경우, 사고의 후유증으로 중증의 전신장애나 하반신 마비가 일어난 경우 등을 ‘중상해’로 보고 가해자를 처벌하라는 지침을 마련해 일선 검찰과 경찰에 전달했다. 그러나 아직 일선 경찰이나 검찰은 이 기준이 모호해 의문을 명쾌하게 해소하거나 논란의 불씨를 가라앉히지 못했다는 평가다.

한편에선 헌재가 결정 즉시 해당 법령의 효력이 상실되는 위헌 결정보다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더라면 이 같은 혼란을 방지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불합치란 해당 법률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위헌 결정에 따른 `법적 공백'이나 `사회적 혼란을 막으려고 법 개정 때까지 일정기간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하거나 한시적으로 중지시키는 결정이다.

헌재가 이번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면 혼란의 핵심인 중상해의 범위와 법률적 정의에 대해 국민과 운수업, 보험업 등 관련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사회적 공감대를 더 형성해 차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헌재 측은 “형법과 같은 처벌조항을 포함한 법률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전례가 없으며 중상해에 대한 기준도 위헌 결정 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정립될 것이라는 게 헌재의 판단”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양측 주장 모두 국민들에게는 환영 받지 못하는 변명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법이 위헌이라면 개정을 통해 정당한 집행이 이뤄지도록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나 이 법에 따라 처벌 받게 되는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의 준비기간은 필요했다는 것이다.

만사가 하루아침에 개벽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든 절차가 있고 그 절차에 따라 상황에 맞게 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 이주복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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