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배기’ 타령
‘가짜배기’ 타령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13 1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생 팔십 노화(老花)께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직한 음성으로 말문을 여셨다. “울산에는 가짜배기가 참 많다”고…. 어디 울산뿐이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에는 반대개념의 짝이 있기 마련이다. 남녀가 그렇고, 긍정과 부정이 그렇다. 진짜와 가짜는 항상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린다.

며칠 전 오후, 팔십 노화에 이르신 A선생님이 찾아오셨다. 선생님은 평생을 울산에서 생활하신 분으로 평소에도 많은 것을 일러주시는 분이다. 커피를 시켜놓고 마주앉았다. 안부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울산에 가짜배기가 많은 것, 김 박사는 알고 있제…?”라고 뜬금없이 말씀을 건네셨고, 그 바람에 필자는 얼떨결에 ‘산초 눈’을 하고 “모릅니다. 제가 우째 압니까. 겉으로는 멀쩡한데…”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울산에는 진짜배이보다 가짜배이가 더 많다. 단디 해야 한다.”라고 재차 힘주어 말씀하셨다. 아마도 어떤 사람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반문하지 않으니까 분위기가 묘했다. 그래서 “저는 단디 살고 있습니다. 저도 울산학춤, 전화앵예술제, 조류조사를 하면서 산전, 수전, 공중전, 지하땅굴전 다 겪었고… 울산 생활이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그랬더니 “아따! 내보다 더하네, 나는 김 박사 앞에서 입도 뻥끗 못하겠다.”면서 눈짓을 하셨다. 필자가 “그러면 겨울염소도 가짜배이입니까?”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될 맞장구를 쳤더니 “햐! 김 박사, 대단하다. 겨울염소도 금방 알아 묵네.” 하셨다. “당연하지, 그뿐이가. ‘짧은 새(혀)’도 가짜배이인데….”라는 말씀에는 박장대소(拍掌大笑)까지 이어졌다. 옆 테이블에서 담소하던 분들이 쳐다보는 것도 모르고 한참을 웃었다. 모처럼 얼굴에 주름살이 펴질 정도로…. 십 수 년을 더 사신 분의 인생노정 속의 관조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 같아서 그저 웃고 지나치지 못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체하는 것이 가짜배이다.” 그분이 내린 ‘가짜배이’(→가짜배기)에 대한 정의다. 물론 가짜배기의 반대개념인 진짜배기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일 것이다. 울산에서 ‘가짜배이’라 하면 ‘전문가가 아니면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표현이다. 또 언뜻 보면 ‘진짜배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진짜배기 같은 가짜배기’ 즉 ‘사이비(似而非)’를 지칭하는 말이다. 만나자마자 ‘가짜배이’ 말씀부터 하셨기에 그 뒷말이 궁금해졌다. 이어진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지면으로 다 전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엎어진 겸에 쉬어간다고 ‘가짜배이’ 말이 나온 김에 몇 마디 하고자 한다. 가짜배기 식별은 의외로 쉽다. 예를 들어보자. 삼호대숲 백로를 ‘학’이라고 우기면 가짜배기, 학은 봤는데 두루미는 못 봤다고 하면 그것도 가짜배기다. 가지산 일대에 호랑이가 100마리나 살았다고 주장하면 가짜배기. 울산을 찾는 떼까마귀 무리가 11월에 온다거나 3월에 간다고 하면 그것 역시 가짜배기다.

개는 석 달 만에 새끼를 낳는다 하면 가짜배기고, 타자에 대한 공격적 태도와 부정적 시각이 지나친 사람도 가짜배기다. ‘울산 사람’이라고 한사코 내세우면 가짜배기고, 시간을 들여 노력한 실천가를 제쳐두고 입만 뻥끗하면 ‘구업(口業)을 짓는’(=거짓말하는, 악담하는) 사람도 가짜배기다. 간섭 또는 지적이나 하는 사람은 가짜배기고, 전문성이 없는 문화·예술인도 가짜배기다. 게으르고 의지나 하는 사람, 준비도 안 하면서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는 사람도 가짜배기다, 자기이익을 우선하는 자나 사심(私心)이 앞서는 자는 가짜배기고, 따라가기만 하는 자도 가짜배기다. 생태관광을 지향한다면서도 습지마다 데크를 능사인양 설치하는 자도 가짜배기다.

이처럼 가짜배기는 참으로 다양하다. 요컨대 가짜배기는 전문성도 없이 자기중심적, 타자배제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이런저런 사례는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나타난다. 가짜배기들은 그들과 관계 맺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에서 확인된다. 자신의 유한성을 망각하고 교만에 빠진 사람이 가짜배기인 것이다. 다리 위를 말을 타고 가는 모양의 ‘교만(驕慢)’, 마루에 다리를 꼬고 걸터앉은 모양의 ‘거만(倨慢)’과 같은 글자에서도 가짜배기가 확인된다. 가짜배기는 낭만(浪漫)의 설득력이 없다. 설득력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신뢰성을 가짜배기한테서는 찾을 수 없다.

가짜배기는 절대 경쟁상대가 될 수 없는데도 스스로 착각에 빠지곤 한다. 말썽이나 부리고, 남을 안하무인으로 공격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 가짜배기다. 부족한 지식과 실력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나서거나 속이는 사람이야말로 가짜배기의 표본이라 하겠다. 가짜배기의 사례를 새삼 나열해본 것은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가짜배기는 나이가 들수록 초라해진다. 나이가 더 들어 안타까워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되돌아보아야겠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