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외국어남용규제법’이라도 만들어 지켜야
우리말, ‘외국어남용규제법’이라도 만들어 지켜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1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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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외국어를 무슨 멋이나 자랑인 것처럼 호기를 부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리말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외국어 사용을 금지하자고 할 때가 언제인데 영어를 밥 먹듯 입에 달고 있으니 우리말과 글이 어찌 빛을 잃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자를 외국어라고 쓰지 못하게 하더니 이제는 영어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따지고 보면 한자는 우리말의 어원이다. 한자는 뜻글자여서 그 속에 뜻이 있고 그 뜻이 우리말 속에 많이 녹아든 것이다. 한자를 외면하는 것은 우리말과 글을 잊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한자를 멀리하다 보니 이상하게 만든 말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이다.

사전에도 없는 신종 우리말 중에는 저속한 말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고교생이 신라천년의 고찰 불국사(佛國寺)의 한자를 ‘不國死’로 잘못 표기한 경우도 있었다. 이래도 계속 한자를규제하고 영어는 상전 모시듯 대접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말의 근원을 잃어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얼마든지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인데도 굳이 영어로 말하고 표기하는 사람들을 한번 살펴보자. 그들 스스로 유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평범한 국민이 볼 때는 ‘요란한 빈 수레’나 다름없어 보인다. 진정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외국인과 대화할 때나 사용할 일이다. 우리끼리 대화할 때나 국내 신문에 글을 쓰거나 연설 또는 강의를 할 때는 영어를 아예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외국어를 밥 먹듯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우리말, 우리글을 얕잡아 보는 사람이라고 본다. 한글을 ‘언문’이라며 우습게 본 옛날 사대부들처럼. 이들은 사대주의 사상에 빠진 몰지각한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신문이나 방송에 나가서는 제발 외국어를 사용하지 말기를 바란다. 대중을 상대로 한 매체에서는 우리말로 번역할 수 없는 영어라 하더라도 우리말 다음에 병기했으면 한다. 예들 들면 음악회를 ‘콘테스트’, 제도를 ‘시스템’, 개인의견을 ‘오피니언’, 연극을 ‘드라마’, 출연진을 ‘캐스트’, 해설자를 ‘내레이터’, 목도리를 ‘마후라’(머플러), 음악극을 ‘뮤지컬’이라고 표현하는 일을 지양하자는 것이다. 그밖에도 신문이나 방송에는 상용어처럼 사용되는 외국말이 너무 많다. 외국어 사용을 막고 주체성을 보여야할 공용매체가 외국어 사용을 오히려 부채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러다간 주어가 영어가 되고 부속어가 우리말이 될 것 같다. 거리의 간판도 하나같이 영어로 된 이름밖에 안 보이는 것 같다. 기업체의 명칭도 마찬가지다. 영어로 이름을 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가? 미국말(영어)이 세계에서 통하는 말이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우리말과 글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래야만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우리글, 우리말이 세계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말, 우리글을 더 널리 알리고 사용해야겠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발전한 미국을 배우기 위한 수단일 뿐인데 그 수단이 우리의 언어문화를 해치는 요소로 둔갑해서야 되겠는가?

우리말, 우리글을 외국인이 의도적으로 상용하는 것을 보았는지 묻고 싶다. 그들은 주체성과 자존심이 대단하다. 우리도 훌륭한 주체성과 은근하고 끈기 있는 자존심을 주권국의 국민답게 당당하게 보여주도록 하자. 그 지름길은 우리말 우리글을 언제 어디서나 애용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안 될 때는 우리말과 글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외국어 사용 규제법’이라도 만들었으면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외국어 남용 버릇을 멀리하는 스스로의 각성이 아닐까?

이덕우 울산시 중구 북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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