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의 병
무형의 병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0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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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태어나 자란 작은 마을에 ‘원치’라고 불린 정신질환자가 있었다. 그는 수염도 안 깎고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더러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다녔는데, 알아듣기 힘든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곤 했다. 이따금 허공을 응시하며 히죽거리는 그의 모습이 5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원치’가 처음부터 정신질환을 앓은 건 아니었다. 그는 작은 동네에서 서울대에 거뜬히 합격하여 상경한 천재였다. 그러나 천운은 천재의 편이 아니었던지, 그는 청운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등록금이며 생활비를 소매치기로 잃어버리더니 정신이상자가 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400km 이상을 걸어서 몇 달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동네 어른들은 그를 늘 안타까이 여겼으나 어린 내게는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고, 혹시라도 마주칠까봐 늘 주변을 기웃거리며 다녔다. 정말로 맞닥뜨린 순간에는 곧장 돌아서서 숨이 목에 차도록 뛰었다.

‘원치’처럼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환자는 치료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외부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정신질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인인구의 10%, 취업연령인구의 15%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보고했다. OECD는 정신건강과 관련된 직·간접비용을 GDP의 4% 이상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 비용이 곧 정신의료서비스의 성과와 질을 파악할 수 있는 값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추측에서 어긋나지 않으리란 계산이 가능하다.

정신질환은 크게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세 가지로 나뉜다. 조현병은 실존하지 않는 허구적 환시나 환청을 실존한다고 생각하는 병이다. 어떤 설명으로도 수긍시킬 수 없는, 잘못된 맹신 역시 조현병 증상이며, 대인관계를 끊거나 가족 말고는 교류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사회적 고립도 그런 증상의 하나다.

내가,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 가운데 정신질환자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성인 10명 중 1명꼴이라니 무척 높은 수치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어떤 악심이나 고난을 마음속에 품었으나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은 몹시도 어렵다. 그러나 그들-정신질환자들을 찾아내 빠른 치료를 권장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자 희망을 겨냥하는 지표다. 이는 그들을 어떤 인재(人災)로 여기는 거만한 시선이 아니다. 사회구성원 전체가 보다 건강하고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행동이다.

옛날과 달리 오늘날은 인터넷 교류가 활발한 새로운 시대다. 오프라인 교류보다 온라인 교류를 추구하고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드러낼 필요가 없는 내면을 애써 감추는 사람도 적잖이 생겨나고 있다. SNS에 심취한 사람들은 현실의 문제를 돌아보는 대신 온라인 세계로 달아나며 진실이 검증될 필요 없이 자신을 포장해 좋은 이미지만을 가꾼다. 이렇게 만들어낸 멋지고 가짜인 ‘나’에겐 ‘내 편’들이 붙기 시작한다. 이런 결과들을 통해 얻는 자기만족을 탐닉하기 시작하면 거짓으로 꾸며낸 모습과 말에 중독되고, 끝내 지어낸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앞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신질환을 앓는 이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시각적인 병이 아니기에 정신질환은 위험하고, 병을 앓는 당사자마저 자신이 질환을 앓고 있다고 자각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무자각이란 얼핏 보면 단순한 무지와 흡사한 뜻으로 느껴지나 그 무게는 전혀 다르다. 자신이 옳다고 한 치도 의심하지 않고 그럴 필요조차 못 느끼는 것은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모든 이를 위협하게 된다. 이러한 태도가 자신의 거짓에 중독된 사람에게서 나타난다면, 그건 바로 현대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조현병이자 하나의 병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망상에 자신이 빠져 참과 거짓도 구분하지 못하고 과몰입에 허덕이는 사람. 이 존재를 문장으로 나열해 읽고 있으면, 이렇게 한심한 사람이 세상엔 도무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나 역시 직접 겪어보기 전까진 한 귀로 듣고 흘리고 마는 화제였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나타나는 새로운 질환은 결국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숙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정면으로 맞서야 하고, 거짓된 모습에 당하거나 속기도 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해결법을 강구하게 된다. 얼마 전 중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 지역주민이 희망이다’라는 주제의 사업 소개가 있었다. 이는 구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주민참여형 사업이다. 전에는 없었던 계획이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커지면서 필요에 의해 준비되었다고 생각하니 무척 반갑고, 결과에 대한 기대 또한 크다.

우리 중구에서는 15명의 희망지킴이가 ‘마음건강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정신건강 및 자살 고위험군 환자를 찾아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참으로 바람직한 모습이다. 중구뿐만 아니라 남구도, 나아가 울산시 전역에도 희망지킴이의 활약으로 정신질환자에게 희망을 배달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강혜경 울산중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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