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느끼고 싶은 여성들’
‘책을 느끼고 싶은 여성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10.0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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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 오전 11시, 극단 푸른가시 소극장(중구 문화의 거리 24), 그리고 ‘북 토크쇼 꽃자리’. 난생처음 혼을 빼앗긴 이색체험의 현장이었다. 연극도 하는 진행자 구경영 대표는 그녀 특유의 치장솜씨를 살려 행사의 이름에도 고운 색깔을 입혔다. ‘구경영의 Book-Reading Party’, ‘북 낭송 파티’, ‘힐링 북 토크’…. 스스로를 ‘메타포(metaphor) 읽어주는 여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예정시간을 30분 넘겨 2시간 가까이 진행된 북 토크쇼는 △오프닝 공연(=팬플루트·panf lute 연주) △북 토크쇼 △초대석 특강 △소감 나누기 순으로 이어졌다. 계단식으로 꾸민 객석 수는 55석. 이날 온기가 묻은 33석 가운데 29석이 여성, 그것도 기혼여성들 차지였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큰언니’ 성주향 여사도 앞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누적횟수로 74회. 2014년 1월부터 매월 한 차례씩 ‘꽃자리’를 폈다니 참 대단한 열정이다. 독서·낭독·나눔, 이 세 가지 문화의 씨앗을 퍼뜨려 보겠다는 그녀의 집념은 어느새 ‘300 팬의 확보’라는 무형의 결실도 이루어냈다. 무대를 해마다 바꾼 덕분일까? ‘꽃자리’의 명성은 가히 전국구 수준이다. “제주, 서울, 부산, 김해, 창원… 안 가리고 발품을 꽤나 많이 팔았죠. 문학기행도 겸해….” 그래도 중심무대는 언제나 울산. 한빛치과 문화공간(옥동), 남부도서관, 교보문고에도 일 년 정도씩은 머물렀다. 올해의 둥지는 또 하나의 친정 ‘푸른가시 소극장’에다 마련했다.

매월 소개하는 책은 4권씩. 작품 낭송이나 소감 발표에 참여하면 그때마다 도서상품권이 돌아온다. ‘꽃자리’ 취지에 공감하는 개인이나 단체에서 건네준 무언의 격려품인 셈. 알고 보니 구 대표는 ‘재능시낭송협회 울산지회장’도 지냈다. 이날 북 토크쇼에서 선보인 ‘10월의 소개도서’ 역시 네 가지. <미루기 습관은 한 권의 노트로 없앤다>,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하나가 된 사랑나무>(그림책),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가 그것.

<하나가 된 사랑나무>를 그녀는 동화 구연 하듯 읽어 내려갔고, 객석은 잠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느낌표는 다시 시인 이정록의 산문 <시가 안 써지면~>의 토막제목에 머물렀다. 제목도 시어를 닮았다. ‘나는 가슴을 구워서 화분을 만들었습니다’,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어머니 스케치북을 본다’…. 김선경이 101수의 시로 엮은 시선집 <누구나 시 하나쯤~> 속의 시인 김영승의 시 ‘반성’은 은근히 가슴을 쥐어박기도 했다.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놓은 그 글씨가 보였다//”

토크쇼의 대미는 특별초대 손님인 한복희 동부도서관장이 ‘세계 도서관 순례기’로 장식했다. 이따금 잔잔한 감탄의 소리가 객석을 흔들었다. 놀라운 것은 구 대표의 강의 기술과 객석의 참여 열기. 구 대표가 지시어를 꺼냈다. “다들 왼손을 펴 보세요. 무엇이 있나요?…시가 있어요.” 객석의 반응도 뜨거웠다. “요즘 가짜시인, 참 많은 것 같아요.” “그 말씀 너무 위안이 되어요.” “가슴에 와 닿아요.”

한복희 관장의 토크쇼가 끝나갈 즈음 객석에서는 하소연도 고개를 내밀었다. “‘울산의 대표도서관’ 하면 중부도서관이었는데 지금 더부살이 신세라니요. 대표 자리, 꼭 좀 되찾게 해주세요.” “시립도서관이 너무 멀어서 불편해요. 주말엔 밤 9시면 문을 닫는데 매번 쫓겨나는 느낌인데, 대안은 없을까요?” 처음으로 발을 담가 본 이색체험의 현장은 ‘책을 느끼고 싶은 여성들의 작은 천국’이란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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