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만주 독립운동가 배출의 요람, 러시아 ‘민족학교’ 사라질 위기
연해주·만주 독립운동가 배출의 요람, 러시아 ‘민족학교’ 사라질 위기
  • 정인준
  • 승인 2019.10.0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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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시민단체 인수, 보존 노력 난항...정부 관심 필요
2일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2019 한국IR대상’에서 SK이노베이션 이명영 재무본부장(오른쪽)이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부터 ‘한국IR대상 최우수상’을 전달받고 있다.
2일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2019 한국IR대상’에서 SK이노베이션 이명영 재무본부장(오른쪽)이 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으로부터 ‘한국IR대상 최우수상’을 전달받고 있다.

 

러시아에서 항일운동 산실로 유일하게 남은 민족학교가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돼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울산지역 한 시민단체가 이 학교를 인수해 보존하려 하고 있지만, 민간단체가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를 상대하긴 힘이 모자란 상태다.

3일 동북아협력기금(공동대표 심규명·서민태·배성동)에 따르면 러시아 연해주 땅 우수리스크시 푸칠로푸카(한국명 육성촌) 민족(농민)학교가 방치된채 폐허로 전락하고 있다. 이 학교는 러시아지역 항일운동의 거두 문창범(1870~사망년 불확실, 1990년 건국훈장 추서) 선생이 1916년 설립했다. 민족학교가 위치한 우수리스크시 푸칠로푸카는 당시 일제의 압박을 피해 연해주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이 마을에 러시아 군납으로 큰 돈을 번 문창범 선생이 민족학교를 세워 계몽운동을 펼치고, 항일운동의 인재들을 길러냈다. 고려인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립운동가 조명희(1894~1938, 호 포석, 충북 진천, 시인) 선생이 교사로 재직하며, 시를 쓰고 독립운동을 했다.

당시 푸칠로푸카 민족학교는 연해주 최고 시설이었다. 3개 60명 클라스 교실, 레크레이션실, 학습실, 주방과 식당도 갖추고 있었다.

이 학교를 통해 배출된 인재들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까지 흩어져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남기고,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김막심 파울로비치(역사 아카데미의 거두), 박일(카자흐대 교수), 강상운(우즈백 노동영웅) 등이 그들이다.

특히 민족학교 출신들은 연해주와 만주를 오가며 무장봉기 등 적극적인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북한정권 초기 장성급으로 현존하는 인물들 다수가 이 학교 출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칠로푸카 민족학교는 남과 북 모두에게 중요한 독립운동 자산인 셈이다.

국가보훈처는 이 학교의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한국의 해외 100대 독립운동기념유산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청사처럼 국가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다.

이 학교는 1937년 러시아의 고려인 이주정책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해 왔다. 구 소련시절 체육시설과 교실이 추가 증축돼 학교로 사용됐다. 이후 학교는 폐쇄됐고, 현지인에게 매각돼 매물로 나와있는 상태다.

동북아협력기금 측에 따르면 현재 이 학교의 보존상태는 엉망이다. 100여년된 건물은 지붕이 일부 유실되는 등 노후상태가 심각하다. 내부는 마루바닥이 다 파헤쳐 있는 등 폐허화 됐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어 화재 등 건물유실 위험성도 크다.

동북아협력기금은 지난달 푸칠로푸카 민족학교 인수를 위해 방문단을 꾸려 이 학교에 다녀왔다. 울산 두서면 출신 법륜스님도 이번 방문에 참여하며, 학교인수에 힘을 실었다. 동북아협력기금에 따르면 현재 이 학교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현지인에게 매매계약금이 건네진 상태다. 따라서 동북아협력기금 측은 이번 방문을 통해 나머지 잔금을 주고 학교를 인수하려 했으나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로 건물은 개인 소유가 가능하지만, 토지는 국가가 관리하고 있다. 현지인은 국가로부터 토지를 장기임대 받아 소유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동북아협력기금 측도 이 방식에 따라 학교의 소유권을 인수하려 했다.

그런데 우수리스크시가 토지임대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매매할 곳이 학교기 때문에 건물보수, 유지관리, 향후 이용계획 등을 요구한 것이다. 동북아협력기금 측은 현지인의 경우처럼 일반적인 소유권 이전을 계획하다 자금계획을 다시 세워야 하는 상태에 놓였다. 먼저 인수를 한 후 차근차근 리모델링을 해 나가려했던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동북아협력기금 관계자는 “우수리스크시에서 요청한 부분은 우리가 앞으로 당연히 해야할 일인데 조건을 걸어 뜻밖이었다”며 “우수리스크시 속내는 민족학교를 통해 한국정부나 지방자치단체와의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우수리스크시로서는 민간차원 보다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움직여 ‘생색’을 내고 싶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우수리스크시의 요청은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정부나 울산시에 우수리스크시의 뜻을 전달할 계획”이라며 “푸칠로푸카 민족학교 인수를 통해 우리의 해외 독립운동 유산을 지키고 가꿔, 교육적 자산이나 관광콘텐츠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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