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태풍에 반토막 난 ‘마린보이의 꿈’
울산, 태풍에 반토막 난 ‘마린보이의 꿈’
  • 김원경
  • 승인 2019.09.2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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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해수욕장 좌초 요트 소유 스무살 청년 ‘육강우’씨15세부터 조종·해기사 등 관련 면허 취득하며 꿈 키워엔진소리로 고장·제조사 분별… 선박 수리업 ‘주경야독’“기계설계 전공 중… 직접만든 요트로 세계일주 꿈 이룰 것”
17호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23일 동구 일산해수욕장 해변에서 파도에 떠 밀려 온 요트가 파손된 모습이다. 	최지원 수습기자
17호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23일 동구 일산해수욕장 해변에서 파도에 떠 밀려 온 요트가 파손된 모습이다. 최지원 수습기자
2017년 8월께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에서 선체하부 도색을 위해 요트를 들어올리는 작업 중인 육강우씨.
2017년 8월께 부산 수영만요트경기장에서 선체하부 도색을 위해 요트를 들어올리는 작업 중인 육강우씨.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요. 소식 듣자마자 뛰어나와서 하루 종일 일산해수욕장 앞에 멍하니 서있었어요”

제17호 태풍 ‘타파’가 할퀴고 간 상처가 깊은 육강우(20·동구 전하동)씨의 넋두리다.

그럴 만 한 게 제17호 태풍 ‘타파’가 몰고 온 강풍으로 지난 22일 오후 12시 10분께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 모래사장으로 밀려와 좌초되면서 부서진 개인요트가 바로 그의 소유기 때문이다.

태풍 ‘타파’가 소멸한 23일 오전 9시께 일산해수욕장. 백사장 모래와 돌멩이, 해초 쓰레기가 인근 도로를 뒤덮은 모습에 지난밤 ‘타파’의 위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7t급의 하얀 요트와 반 토막이 난 3.5t급 요트 두 척이 눈에 띄었는데 그 앞에는 상심한 표정의 육강우씨와 그의 가족이 서 있었다.

육 씨는 “원래 있던 일산항 정박자리를 2년 전 한 레저업체가 영업을 위해 자리를 바꿔달라고 해서 안전한 정박을 위한 장치마련을 조건으로 바꿔줬다. 이번 태풍대비 정박도 이 업체가 문제없이 했다고 해서 믿었는데…”라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반 토막 난 요트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는 그는 2014년 이 요트를 소유하게 됐다. 일각에선 소위 금수저로 태어나 어린나이에 요트 주인이 된 거 아니냐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지만 그의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는 평범한 준공무원이다.

육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선풍기, 컴퓨터 등 가전제품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특히 모터달린 기계를 좋아했고 그 때문에 일찌감치 진로를 선박 쪽으로 정했다.

이후 15세 때 부터 동력수상레저기구 일반조종면허 1급, 요트 조종 면허, 25t급 이하 선박 조종 가능한 해기사 6급 면허를 취득해가며 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갔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이처럼 아들의 열정을 잘 알았던 그의 부모는 대출까지 받아 중고요트를 마련해주게 됐다. 육씨는 이 요트를 조정하고 직접 수리하면서 실력을 쌓았고 이제는 선박 엔진소리만 듣고도 고장 상태와 제조사까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가 됐다.

특히 3년 전부터는 선박수리 사업자를 내고 ‘주독야경’을 했다. 틈틈이 일산항과 전국을 무대로 레저선과 소형선박 엔진수리를 하며 번 돈을 생활비에 보태기도 했다.

2016년에는 지상파 한 TV프로에 꿈을 향해 나아가는 중학생 요트 청년으로 소개가 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을 더 안타까워하던 어머니 여현정씨는 “강우는 중학생 때부터 작은 모터보트를 만들기도 하고, 이웃 어민들이 선박수리를 맡길 정도로 선박 신동이었다. 불법적인 일만 아니면 무엇이든 아들의 도전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이번 일은 어떻게 도와줄 방법도 없고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육 씨는 “현재 기계설계를 전공하고 있다. 앞으로 레저선박 추진 장치 개발과 요트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큰 계획”이라며 “내가 직접 만든 요트로 언젠가 세계일주의 꿈을 이루겠다”며 당찬 각오를 피력했다.

김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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