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푹 빠져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
일에 푹 빠져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18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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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막내아들이 있다. 바야흐로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야하는 아들을 보노라면 측은지심이 들지만, 살아남으려면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자기합리화로 억지공부를 시키고 있다. 학원에서는 매일 숙제가 주어진다. 녀석은 나름 여러 가지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면서 쏟아지는 숙제를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필자도 이미 초등학교 때 써먹었던 수법이었음을 녀석은 알 리가 없다. 당연히 우리 부부는 제갈공명에 버금가는 전략으로 대응함에도 전혀 먹혀들지 않고 육아전쟁에서 패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고민하던 차에 큰 변화가 생겼다. 초등학교 대항전에 티볼 선수로 막내아들이 나간다고 하면서부터다. 티볼은 그 학교의 전문 운동종목도 아니다. 또한 막내아들은 정식 운동선수도 아니면서도 하루에 몇 시간씩 티볼 연습을 한다. 평소 학교 가야할 시간에 잘 일어나지 않던 녀석이 티볼을 시작하면서 아침 7시가 되면 벌써 등교하려고 한다. 그동안 공부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불같은 열의가 티볼에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이 녀석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드디어 녀석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을 수 있는, 육아전쟁의 대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아들아! 이번 주말에 티볼 연습하러 가려면 영어, 수학, 독후감 등의 숙제를 다 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문을 나설 수 없다”고 음흉한 미소와 함께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숙제 빨리 하고 갈게요”라고 순순히 말하는 게 아닌가. “어라, 이렇게 쉽게 풀릴 일이 아닌데….” 우리 부부는 의아해하면서 지켜보았다. 숙제를 하기 위해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웬걸, 녀석은 제시간에 숙제를 마무리하고 엄마의 깐깐한 검증도 쉽게 통과해버린다. 그리곤 “엄마, 다녀올게요” 하며 의기양양하게 집을 나선다.

서로 마주보며 놀랐지만 이 모든 것이 녀석이 좋아하는 티볼에 몰입해서 생긴 마법 같은 효과다. 운 좋게도 지난 울산시교육감배 대회에서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팀이 우승을 했다. 녀석은 예전보다 더 활동적이고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지금은 아들 숙제에 대해 한시름 덜고 우리 가족 모두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필자도 공부에 관한 한 부모님의 기대를 일찌감치 벗어나 자유롭게 초등학교를 다녔다. 축구를 비롯해 노는 것만큼은 엄청 좋아했고, 뭐든지 노는 것에는 깊숙이 몰입했던 기억과 함께 놀 때가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 새롭다.

‘몰입 심리학’의 대가인 시카고대학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인간은 언제 행복할까?”라는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했다. 우리는 보통 ‘행복한 순간’ 하면 즐겁게 여가를 보냈던 때를 떠올린다. 그런데 그는 여가를 즐길 때보다 일할 때, 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 행복감을 더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다. 즉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푹 빠져있는 상태를 플로우(flow)라 명명한 것은 최적 경험에 빠져있을 때를 물 흐르는 듯 편안한 느낌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플로우와 비슷한 단어가 몰입이다. 자신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때 몰입을 느낄 확률이 높다. 요즘 필자는 하고 싶은 일 중에서 내 역량보다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니 일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만히 다시 물어본다. “나는 지금 그 일에 몰입하고 있는가?”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여러분은 자신의 일에 진정 몰입하고 있는가. 그러면 행복한 삶이다.

장상용 엔코아네트웍스 대표이사·공학박사·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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