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지인 중 한 사람은 신정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낮 시간 중 한가한 틈을 타 ‘커피타임’이라며 문자를 보내곤 한다. 얼마 전 추석연휴에 명절 선물을 받아가라고 또 연락이 왔다. 그래서 추석 이틀 전 찾은 신정시장 주변 도로는 평소보다 아주 많이 말려 공영주차장에 진입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필자가 신정시장에 가면 주차는 항상 공영주차장으로 정해져 있는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쌍방 통행하는 폭이 좁아 애매한 것이다. 차량들이 많이 출입하는 시간대에는 진출입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이곳은 증축하여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나름 편리성을 더했지만 아쉬운 것은 도로 폭이 여전히 좁다는 것이다.
팔자는 재빠른 판단으로 다른 곳에 알고 있던 사설주차장으로 승용차를 내몰았다. 20여 대를 대면 가득 차는 그곳에 마침 자리가 있어 빈 곳에 정갈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주차장을 돌보는 여사장님은 “차키를 맡기라”고 채근했다. “아니, 주차 잘해서 안 맡겨도 될 거 같은데요?” “오늘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 명절이니 맡기고 가는 게 더 좋아요.” 그래서 필자는 스마트키를 맡기고 지인의 가게에서 환담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선물을 받아왔다.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날은 명절이라 사설주차장의 특성상 요금이 배나 많았다. 그래서 4천 원을 건네면서 “아까 맡겨둔 차키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여사장님은 “아니, 아까 차키를 맡긴 적이 없는데 왜 달라고 해요?”라며 반문했다. 황당한 일이지만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런데 옆의 남자분도 거들면서 “건넨 적이 없기에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기막힌 일이지만 하도 닦아 세우는 바람에 불과 한 시간 전의 내 행동을 복기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면서 다시 지인의 가게에 가서 앉았던 의자의 방석을 뒤져보고, 책상에 두었는지 살펴봐도 없었다. 지인도 차키는 꺼낸 적도 없다고 했다. 다시 주차장에 가보니 여사장님은 여전히 같은 말을 되뇌면서 “감시카메라 업체 직원을 불렀으니 곧 판정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키를 받아두는 바구니를 보여주었고, 사무실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휴지통까지 뒤져봐도 없어요”라고 이구동성 여사장님 편을 들었다.
마침내 보안업체 직원이 출동했다. 자초지종 설명을 들은 보안업체 직원은 사무실의 컴퓨터 화면에서 필자가 주차장에 들어온 시간대의 영상을 이리저리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차키를 건네는 장면은 공교롭게 사각지대 부근이어서 화면을 다시 뒤로 돌리고 확대하고, 다시 뒤로 돌리고 확대해서 여러 차례 되돌려 보았다.
필자의 입에서는 “여기 봐요. 분명히 제가 키를 건네주고 있잖아요? 이래도 아닌가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문제의 화면에서는 여사장님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다만 여사장님 발뒤꿈치 조금과 필자가 건네주는 손에서 열쇠를 받아드는 장면에서 여사장님의 한 손만 화면에 들어왔다 열쇠를 받아들고 나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자칫 2~3cm만 화면에서 멀어졌어도 사각지대에 놓여 미궁에 빠질 뻔했다.
결국 여사장님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필자의 판단으론 그날따라 손님이 너무 많아서 여사장님은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현상을 겪은 거였다. 그래서 필자는 택시를 타고 신문사가 있는 중구 우정동으로 와서 급하게 예비키를 가지고 다시 돌아가서 차를 무사히 몰고 돌아왔다. 혹시 다른 손님 차를 주차하면서 모르고 흘렸을 수도 있으니 며칠 말미를 두기로 하고, 그 후에는 변상조치를 취하기로 약조했다. 명절을 앞두고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에피소드(episode) 하나가 허락도 없이 불쑥 내 삶에 들어왔다. 초대받지 않은 낯선 손님처럼….
박정관 굿뉴스울산 편집장, 울산누리 블로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