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지는 추석
기다려지는 추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1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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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새 옷을 선물 받을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참 희한하게도 냄새는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무지개다리 같다. 재래시장을 지나가다가 보면 약간은 기름 냄새가 섞인 듯한 새 옷 냄새가 코를 자극할 때가 있다. 그 순간 코를 벌렁거리며 꽃향기에 취한 듯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그리고는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타임머신을 타고 40여 년 전으로 돌아가서 추억을 더듬어 본다.

유년시절엔 가난한 살림인지라 평소엔 친척들의 옷을 물려받아서 입었던 기억이 난다. 간혹 마음에 드는 옷도 있었지만, 정말 입기 싫은 옷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입을 삐죽거리며 투정을 부리곤 했다.

“엄마, 나도 OOO처럼 새 옷 입고 싶다. 와 맨날 헌옷만 입어야 되노?”

고무줄뛰기, 소꿉놀이를 하고 놀던 그 때는, 이런 말이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줄 몰랐다.

“이제 열 밤만 자면 추석이다 아이가. 그 때는 새 옷 사 줄게.”

새 옷을 선물 받을 수 있는 날은 일 년에 딱 두 번. 추석과 설날이었다. 엄마가 새 옷을 사 주는 명절이 되면, 나는 새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추석을 간절히 기다렸던 이유가 또 있었다. 마당에 널어놓은 노란 콩이 따가운 가을볕에 스스로 가슴을 터트리며 탁탁 소리를 낼 때쯤이었다. 장독대 옆 대추도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서울에 살고 계신 큰아버지가 선물꾸러미를 안고 오셨다.

큰아버지는 지금은 별이 되신 아버지와 쌍둥이 형제이시다. 슬하에 아들만 둘을 둔 탓에 딸이 없는 당신은 나를 유난히 예뻐해 주셨다. 그래서인지 당신이 오셨다가 서울로 가시는 날은 나의 눈가에 이슬방울이 맺히곤 했다. 큰아버지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그리움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신 분이다.

반평생을 살아온 지금도 추석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친척들도 거의 다 만나서, 따스한 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댁에서 맏며느리의 임무를 끝내고 친정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코스모스 환한 꽃길이다.

올해는 외사촌 동생이 둘째 아기를 출산해서 안고 왔다. 생후 6개월쯤 되었는데 양손을 잡아 주니 제법 오래 서서 재롱을 떨었다.

친정엄마가 한 말씀 하신다.

“모유를 먹이니까 얼마나 건강하노. 아이고 이 다리 좀 봐라. 장군감이다.”

모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과일을 먹고 있으니, 먹고 싶다는 듯 아기가 입맛을 다셨다. 포도와 배를 입술에 살짝 가져다주니 단맛을 느꼈는지 쪼로록 쪼로록 빨아먹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다. 과즙을 어느 정도 먹고는 감사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척들은 모두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이 세상 꽃이 다 예쁘다지만 사람꽃만큼 예쁜 꽃은 없는가보다.

추석날 밤에 친정엄마와 산책하며 소원을 빌어본다. 평소 걷는 걸 좋아하는 나는 보름달이 뜰 때면, 달빛 아래 밤새 걷는 상상을 해 본다. 이번 추석엔 아름다운 달밤에 어울리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란 소설을 들려주며 함께 걸었다. 세월이 갈수록 친정엄마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게 마음을 아리게 한다.

4일간의 꿈같은 연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옛날 당신이 사 주던 새 옷 냄새를 다시 떠올려 본다. ‘음! 마음이 편안해지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꽃이 피어난다.’





천애란 재능시낭송협회 울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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