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강국과 데이터
소재강국과 데이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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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반도체 산업의 전략물자로 삼고 있는 불화수소(FH)는 원천소재이면서도 완제품이다. 불화수소는 불소와 수소의 화합물인데, 수소는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불소는 그렇지 못하다. 불소는 화학적으로 독립적인 원소이기 때문에 이를 합성하지 못한다. 오로지 자연계에서 독립된 원소를 채취, 포집해야 한다. 불소는 형석(螢石)이란 광물에 많이 포함돼 있다. 이 형석을 바짝 말려 처리해서 불소를 얻는다.

그런데 이 형석은 세계에서 몇 개국밖에 산지가 없다. 중국, 아프리카, 남미국가 일부 등이 산지일 뿐이다. 일본이 불화수소를 전략물자화하는 것은 사실 ‘호가호위’하는 것과 다름없다. 일본도 여타 국가에서 형석을 수입해서 불소를 만들고, 불소와 수소를 화합해 불화수소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 때 형석의 산지인 중국이나 다른 국가들이 형석을 전략물자화한다면 일본의 불화수소 산업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가 만약 산지의 형석 광산에 투자해서 지분을 확보하고 일본에 대한 형석 수출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일본은 어떻게 대응할까?

불화수소의 원재료인 형석처럼 소재의 흐름(supply chain=상품의 연쇄적인 생산 및 공급 과정)을 알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또 상대방의 약점이 무엇이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소재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2014년 ‘소재 게놈 이니셔티브(MGI전략)’를 통해 소재흐름을 체계화시키고 있다. 인간 게놈 지도처럼 소재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개발에서부터 상용화까지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게 목표다. 이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호라이즌 2020 프로젝트), 일본(2기 인공지능전략 SIP), 중국(중국 제조 2025) 등 소재강국들의 특징적인 면모다.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소재)전쟁을 계기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가 지난달 5일 내놓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은 기업들의 주요 건의사항들이 반영됐다. 이 중 기업들은 정부에 ‘데이터 경제’를 주문했다. 인공지능을 활용할 빅데이터 플랫폼을 만들어 기술개발에 필요한 시뮬레이션을 해 달라는 것이다.

데이터는 소재를 개발하는 데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정인호 교수팀은 세계 유수의 철강회사 11곳으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한 번에 50t 정도의 상용 가능한 소재를 생산해냈다. 기존 수백 수천 번의 실험을 통해 만들었던 신소재 개발의 틀을 완전히 깬 것이다. 예측 가능한 모델과 데이터베이스화된 정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데이터분석본부 부산울산경남지원 강종석 본부장은 수출입 관세코드와 미국의 화학물질코드(CAS)를 융합해 소재흐름을 추적하는 시뮬레이터를 만들었다. 불화수소 관세코드(2822.XX-XXXX) 10자리를 추적하면 수 백 개의 사용처가 드러난다. 이 사용처 중간중간 포인트는 강점과 약점을 확인할 수 있는 밸류체인(value chain, 가치사슬)을 나타내고 있다.<본보 8월 13일자 보도>

아직 우리 정부에서는 소재흐름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소재흐름을 인력으로, 설문조사로 파악하다 보니 ‘어떤 산업에 무엇’ 등 단편적인 대책들만 나오고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데이터 빅 플랫폼’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 여기에 모인 데이터들이 분석돼 전체적인 소재강국을 태동시킬 전략이 나와야 한다. 적재적소, 적기에 필요한 투자와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한다면 선진 소재강국들을 급격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소재강국으로 가는 첫 걸음은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해 잘 활용하는 데 있다. 이게 핵심이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인준 취재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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