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피족(頭皮足) 한 무더기’의 한담(閑談)
‘두피족(頭皮足) 한 무더기’의 한담(閑談)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1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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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하루 전날 점심시간, 메뉴는 쉽게 설렁탕으로 정했다. 설렁탕집은 평소에도 혼자 가기가 조금 멀게 느껴졌지만 이날은 동료들과 동행해서 그런지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예약을 해두었건만 앞선 선약에 밀려 일행은 한동안을 기다려야 했다.

식탁에 마주앉은 한 분이 설렁탕의 유래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 나라님이 선농단에서 의식을 치렀는데 구경 나온 백성들이 참 많았다. 의식이 끝나자 나라님은 음식을 백성들과 나눠먹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라님은 국물 있는 음식을 만들게 했고, 그것이 바로 설렁탕이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설렁탕을 먹을 때 자주 들어온 이야기인지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일행은 시선을 주방으로 돌렸고, 캐리어가 가까이 오면 고쳐 앉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설렁탕이 더디게 나올 기미가 보이자 이번에는 일행의 시선이 휴대폰 쪽으로 쏠렸다. 필자는 2G폰이라 꺼내볼 엄두도 못 내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그때 일행 중 한 분이 ‘두피족’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는 두피족 값이 소 한 마리 값의 십분의 일이나 됐다”는 이야기였다. 필자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두피족이 무슨 말입니까?” “두피족을 모릅니까?” 결국 설렁탕 유래의 연못에 두피족 값이 작은 돌멩이로 던져졌다. 설렁탕의 동심원이 점점 커지더니 그 가장자리에 두피족 한 무더기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두피족 이야기는 필자뿐 아니라 일행도 처음이었다. 모두 뱁새눈으로 집중했다. ‘두피족 한 무더기가 소 한 마리 값의 십분의 일’이라는 이야기는 설렁탕을 먹으면서도 이어졌다. ‘두피족(頭皮足)’은 소의 머리[頭]와 가죽[皮], 발[足]을 합친 한자말이라고 했다. 과거에 물자가 모자라 생활이 힘들었던 60∼70년대 울산의 어느 농촌에서 실제로 있었던 명절 일화를 우연히 듣게 된 것이다. 그 무렵의 이야기를 덧붙여 소개한다.

요즘은 제수용품을 시장에서 편리하게 구하지만 60∼70년대 농촌의 사정은 그렇지가 못했다. 결혼이나 초상 같은 대소사를 만나야 소나 돼지를 마을 차원에서 잡을 수 있었다. 매년 설이나 추석이 돌아오면 조상에게 올리는 산적, 탕 같은 제물을 장만하려고 동네 어른들이 의논 끝에 소를 한 마리쯤 잡는 것이 전통이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명절이 아니면 생각도 못했기에 보통 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많은 식구에 어쩌다 소고기 한 근으로 소고기국이라도 끓이면 기름은 동동 뜨는데 ‘소가 장화 신고 건너갔나?’ 싶게 고기는 안 보이고 멀건 국물뿐일 때가 많았다. 그때는 그것도 감지덕지(感之德之)하며 먹었다. 고기 건더기를 찾으려고 휘휘 저어보아도 걸리는 것은 무, 대파나 숙주나물이 거의 전부였다.

동네에서 잡은 소는 뒷다리, 앞다리 등 부위별로 대략 열 무더기로 나누었다. 이때 소의 머리와 가죽, 족발 세 부위도 열 무더기 중 한 무더기를 차지했고, 두피족 가격이 소 전체 가격의 10%쯤 되는 것은 당연했다. 여유 있는 가정에서야 한 무더기를 몽땅 가져갔겠지만 대부분은 형편이 그렇지 못해 한 무더기를 다시 두세 토막으로 나누어 가질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말 수가 적은 아내도 명절이 다가오면 바깥양반 들으라는 듯 “우리 식구도 명절에는 두피족 한 무더기로 보신 한번 했으면…” 하고 넋두리를 한다. 남편은 아무 대꾸 없이 담배연기만 연신 뿜어대지만 스치듯 흘려보낸 아내의 말이 가슴에 못으로 박힌다. 그 순간 아버지가 막걸리 한 사발의 힘으로 용단을 내린다. “암, 우리 식구도 이번 추석에 몸보신 한번 해야지, 우리도 두피족 한 무더기를 사지.” 올해는… 하고 은근히 기대하던 가족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 무렵 한 가정의 식구 수는 보통 5∼6명쯤 됐다. 가부장적 인식이 강했던 당시는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제비처럼 아버지의 한마디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 했다. 가족의 의식주를 혼자서 책임졌던 가장의 결단은 실로 대단한 놀라움이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두피족 한 무더기를 나누어 이고지고 당당하게 대문을 들어선다. 정성스레 장만한 두피족은 몇 대를 이어왔을 시커먼 무쇠 솥 안으로 들어가고 이내 장작불이 지펴진다. 두피족은 무쇠 솥이 눈물을 흘릴 때까지 오래 푹 삶긴다. 건져낸 고기는 살코기만 바르고 자루에 담아 무거운 돌을 얹은 채 몇 시간이나 눌러놓는다. 이윽고 온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 푹 삶은 두피족을 맛깔스럽게 먹는다.

“탱탱한 소고기 편육은 맛이 참 좋았습니다.” 마을민속 두피족 이야기는 참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그 이야기는 설렁탕 그릇의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계속됐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고, 이야기의 끈은 돌아오는 길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어릴 적 명절에는 필자의 아버지도, 두피족은 아니라 해도, 으레 고기를 장만하셔서 식구들의 건강을 챙기셨다.

두피족 이야기가 민속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는 아주 좋은 자료가 됐다. 미처 알지 못했던 울산 상개동 농촌마을의 명절민속 중 하나를 알게 됐다는 점에서 무척 기뻤다. 그날 일행과 설렁탕을 먹게 된 인연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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