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준의 인생여담] 잊지 못할 특별한 만남
[박재준의 인생여담] 잊지 못할 특별한 만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15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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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계장! 차 한 잔 하지.” 전화음성 한마디에 ”예“ 하고는 얼어버렸다. 부동자세로. 50여 년 전, 계장 승진한 후 새 부임지인 한전 장비관리사무소에서 처음 맞이한 어느 날 아침의 일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박균성 소장은 ‘대한민국의 엘리트 중 엘리트’로 소문이 났던 분.

그 무렵 우리나라의 전력회사는 민간 3사(경성전기, 조선전업, 남선전기)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5·16 이후, 경제개발에 필수적인 전력사업의 ‘효율성 극대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분할된 전력 3사의 단일화가 그 해답이었고, 최종목표는 국유화에 있었다. 결국 전력 3사는 ‘한국전력’이란 새 이름으로 거듭나게 된다.

경제기획원 고위간부였던 박 소장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한전 대통합’의 장비·행정 분야 책임자로 파견되어 왔다. 시간이 흘러 임무가 끝난 후에는 파견근무자 대부분이 원대복귀를 했지만 박 소장은 1직급(이사급) 최고책임자로 눌러앉고 만다.

“이제부터는 박 계장도 간부인 만큼 신문 한 장을 펼쳐도 편집국장의 자세로 봐야 한다.” 다소곳이 앉아 훈시를 듣고 있던 필자에게 박 소장이 불쑥 끄집어낸 뜻밖의 충고였다. 단순한 기술직급이 현장에 충실하면 그만이라고 여긴 편협한 생각이 보기 좋게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한전 간부 시험은 ‘한전고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시험과목은 주로 전공과목, 사규와 상식, 논문이었고 특히 전공은 범위가 워낙 넓어 사시·행시에 비견할 만도 했다. 운 좋게 합격은 했지만 필자는 보직이 ‘특수업무’여서 조직변경과 맞물려 동기들보다 약 3개월 늦게 초임발령을 받게 된다. 훌륭한 멘토를 만나기 위한 행운의 기다림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런 분들과의 만남은 차례로 이어진다. 기술 분야의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 행정 분야까지 발을 뻗칠 수 있도록 지평을 열어주신 분, 글을 대하는 기본기를 터득하게 도와주신 분…. 이분들한테서 배우고 익힌 노하우는 나중에 월성원전의 굵직굵직한 사건·사고 보고서도 거침없이 써내려가게 만든 숨은 실력의 자양분이 된다.

박 소장에 또 한 분의 멘토가 나타난다. 한전 퇴임 후 30여년 만에 극적으로 만난 박정기 전 한전 사장이 바로 그분. 박 전 사장과의 인연은 월성원자력 1호기의 초대형 사고 때 죽기를 각오하고 사고 수습에 나선 필자의 돈키호테 같은 우직함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맺어진다. 박 전 사장은 ‘한전 100주년’에 필자가 사내 ‘톱-텐 영웅상’을 받도록 도와주었고 매스컴에 소개까지 해주었다. 이분은 지금도 필자를 ‘박 과장’(은퇴 당시 필자의 직급) 또는 ‘사장’이라 부르며 끈끈한 인연을 1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가 집필한 수많은 저서 중 백미(白眉)는 단연 <어느 할아버지의 에너토피아 이야기>. 한전 재직 시의 경영 경험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진솔하고 재미나게 풀어낸 저서로, 목구멍에 술 넘어 가듯 술술 풀어나간 그의 글 솜씨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군 장교 출신인 그의 문체는 똘똘 뭉친 군인정신으로 충만하고, 스타카토(staccato)로 끊어내는 문장은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필자는 ‘살아있는 경영지침서’, ‘범접할 수 없는 인생지침서’라고 감히 자랑할 수 있다.

끝으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분(언론인)이 있으나 지면 사정으로 다 풀어내지 못해 아쉽다. 여하간 이 세 분은 필자의 인생길에 참다운 멘토가 되어주신 분들이다. 글 보는 눈을 뜨게 해준 박균성 님, 글에 향기 넣는 법을 가르쳐준 박정기 님, 글을 바로잡아주고 윤필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또 한 분, 이렇게 세 사람은 나의 인생행로에서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분들이다. 이 세 분의 조언은 필자의 여생에 유익한 자양분이 될 것이 틀림없다.

박재준 에이원공업사 사장·NCN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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