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근현대 문화 산실 ‘삼일회관’ 보존 목소리 고조
울산 근현대 문화 산실 ‘삼일회관’ 보존 목소리 고조
  • 김보은
  • 승인 2019.09.0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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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계몽운동 역할… 재개발로 철거 위기10일 존치 위한 비대위 발족, 역사가치 홍보 등 활동

 

 

울산시 중구를 중심으로 울산의 근현대 유산 ‘삼일회관’ 보존에 대한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울산향토문화연구회 등이 진행한 서명운동에 울산시민 2천여명이 참여했고 10일에는 ‘(가칭)삼일회관 존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해 삼일회관 존치에 힘을 싣는다.

중구 북정동에 위치한 삼일회관은 3·1운동 직전 해인 1918년 울산의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건립되기 시작했다. 건립이 완료된 시기에 대해선 해방이후 울산에서 극작가로 활동한 김태근씨가 발간한 ‘함월산(2006년)’에는 1919년 5월로, 동아일보의 기사에는 1921년 12월로 기록돼 있는 등 낙성식 일자를 두고 여러 주장이 있다.

삼일회관이 세워진 초기에는 유학을 간 울산의 부자집 자녀들이 방학 때 귀국 보고회를 갖는 곳으로 사용됐다. 1920년대부터는 울산 항일운동 단체인 청년회가 면별로 구성되는 데 이들 청년회가 대부분 이 건물에서 창단식을 갖고 항일운동을 벌였다. 해방 이전에는 항일운동의 중심 무대로, 6·25전쟁 때는 피난민들의 숙소가 됐다.

삼일회관의 역할 중에는 교육의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는 이곳에서 야학이 열렸고 1930년에는 이 건물에 울산 최초의 사립유치원으로 볼 수 있는 ‘울산유치원’이 마련됐다. 6·25전쟁으로 울산초등학교가 23육군병원 분실로 지정되면서 오갈 데 없는 울산초등학교 학생들이 이 건물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비교적 현대로 와선 반공을 주제로 한 각종 문화활동이 활발해진다. 울산 근대극 1호라고 할 수 있는 김태근씨가 연출한 ‘혁명가의 후예’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1971년에는 삼일회관 훼손 정도가 심해 울산 읍장을 지냈던 고기업씨가 성금을 내놓아 대대적인 보수를 하게 되고 ‘삼일회관’이라는 이름을 이때 갖게 됐다. 이전까지는 ‘청년회관’이었다.

이처럼 울산 근현대 문화의 산실 역할을 했던 ‘삼일회관’이 중구 B-04지구 재개발사업 부지에 포함돼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2년전부터 삼일회관 보존을 위해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는 울산향토문화연구회 김성윤 전 회장은 “중구의 근현대사 건물은 다 사라지고 현재 남은 건 ‘삼일회관’이 유일하다. 그마저도 재개발로 인해 존치가 어렵게 됐다”며 “울산시가 삼일회관 존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천여명에게서 받은 ‘삼일운동 100주년 울산 삼일회관 보존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서명지를 이달말 송철호 울산시장에게 직접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가칭)삼일회관 존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10일 울산시 프레스센터에서 발족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한다. 100여명으로 구성됐고 대부분 중구 주민들이다.

이들은 울산시민들에게 삼일회관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서명운동과 함께 울산시 등과 존치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비대위 관계자는 “삼일회관의 문화적 가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존치를 최우선하며 지방정부와 협상하겠다”며 “추가로 120년 역사의 북정우체국도 지어진 목적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우정박물관 등의 방안도 제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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