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습타파와 변화지향, 그리고 처능
구습타파와 변화지향, 그리고 처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08 2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도사 제27대 주지를 역임한 정우 스님의 법문을 유튜브를 통해 시청하고 있었다. 스님은 노천 월하 스님의 맏상좌인 홍법 스님의 맏상좌이다. 얼마 전의 백중기도 5재 법문 중 일부가 가슴에 와 닿았다.

1976년, 25세의 정우 스님이 공부를 위해 서울로 떠났다. 대중이 걱정할까 싶어 며칠 후 통도사 대중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 속에는 당시 76세의 벽안 스님이 쓰신 답서 내용도 소개돼 있었다.

“정우를 보내고 궁금하던 차에 편지를 받아보고 반겨하였다. 공부를 위한 것이니 아무쪼록 공부를 착실히 하고 돌아와서 통도를 위하고 또 불교를 위해서 크게 활약하고 훌륭한 승려가 되어라. 우리 불교는 현재 이 사회의 바람을 응수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반성해서 구습을 타파하여라. 이만. 76년 10월 12일. 벽안 답.”(2019.7.28. 백중기도 5재 법문 중에서)

벽안 큰스님의 답장 글 중 ‘우리 불교는 현재 이 사회의 바람을 응수하지 못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반성해서 구습을 타파하여라’는 내용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사회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정우 스님의 용기를 북돋우면서 앞으로의 바람까지 부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4년 전의 일화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장 2절)

통도사 노스님도 성경의 기록도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구습 타파와 새로운 변화다.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되 본질은 변함이 없음을 상기시키는 말씀으로 짐작된다. 이산 혜연 선사의 발원문을 되뇌었다.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 안 들고 청정범행을 닦고 닦아 서리같이 엄한 계율 털끝이든 범하리까.”

서산대사의 선가귀감(禪家龜鑑)을 읽었다. “출가(出家)하여 스님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고,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명예(名譽)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煩惱)를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智慧)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三界)에서 뛰쳐나와 중생들을 건지기 위해서다.”(오십 일곱 번째 게송)

지인과 약속이 있어 외출하던 중에 ‘언양 집배센터로부터 배달 예정입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들어와 챙겨보니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보내온 우체국 택배였다. 언뜻 봐도 작은 책으로 느껴졌다. 붙여진 송장(送狀)에 적힌 글을 읽어보니 역시 책이었다.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백곡 처능, 조선 불교 철폐에 맞서다』(벽산원행·자현, 조계종출판사, 2019)란 책이었다. 단숨에 읽었다.

불교를 구하고자 목숨을 걸고 지어 올린 백곡 스님의 ‘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가 중심이었다. 다 읽고 나서 몹시 부끄러웠다. 백곡 스님을 처음 알게 됐기 때문이다. 늦은 감은 있으나 스님의 행장을 비로소 알게 되어 무척 기뻤다. 필자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환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제7기에 이어, 2019년 제8기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다행히 귀한 자료를 받아 볼 수가 있다.

백곡 처능(白谷處能·1617∼1680) 스님은 조선 중기 가혹한 척불의 시대상황에서 냉철한 논리로 척불의 시정을 촉구한 인물이다. 불교를 말살하려는 기득권 세력과 현종을 정면으로 비판한 8천150자에 달하는 상소문 ‘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를 올려 척불 정책을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이러한 논리적 반박이 숭유억불의 유교중심 시대에 있었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간폐석교소’를 올린 백곡의 의기가 한국 불교사에 일대 획을 그었음에도 현재까지 깊이 있게 조명되지는 못했다.

스님의 속성은 김씨, 법호는 백곡, 법명은 처능이다. 12세에 의현(義賢)에게 글을 배우다가 출가했다. 신익성(申翊聖,·1588∼1644)으로부터 유학과 시문을 배우고, 지리산 쌍계사의 벽암각성(碧岩覺性,·1575∼1660)을 찾아가 법제자가 된다. 1674년(현종 15) 남한수어사 김좌명(金佐明)의 주청으로 팔도선교십육종도총섭이 되었으나 곧 사퇴했다. 조선 제18대 현종이 불교를 배척하고 도성(都城)의 비구니 수행공간인 자수원과 인수원 등 이원을 폐쇄하며 불교를 탄압할 때 전국 승려를 대표하여 <간폐석교소>를 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책을 펴낸 원행 스님은 계사생으로 1973년 태공 월주 큰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금산사에 출가했다. 해인사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뒤 동국대 교육대학원과 불교대학원에서 수학했다. 학문에 대한 깊은 열정으로 한양대에서 석사와 박사학위(2013년)를 취득했다. 제17교구 금산사 주지,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 중앙승가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이 바로 그분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