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을 보면 더욱 생각나는 어머니
보름달을 보면 더욱 생각나는 어머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0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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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가 가까워져 보름달이 휘영청 차오를 때면 명치끝이 시려온다. 추석 전날 저녁에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이다.

햇수로 벌써 이십일 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시린 정도는 조금도 희석이 안 되고 있다.

갑자기 악화된 병세로 중환자실로 들어가셨지만 며칠은 더 생존하실 거라는 담당의사의 말을 듣고는 다른 형제는 병실을 지키고 필자 내외만 아버지가 계시는 강원도 영월군 첩첩산골로 내려갔다. 부랴부랴 이것저것 장만해서 아버지와 저녁식사를 한창 하고 있을 때였다. 서울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 정신없이 아버지를 모시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고 국도를 휘잉 지나 보름달빛이 훤한 길을 달리고 달려 어머니가 계신 서울의 병원으로 다시 달려가던 장면이 흡사 엊그제 일 같다.

돌아가시기 두어 달 전, 그때는 병세가 조금 회복된 듯하여 어머니가 평소에 가보고 싶다던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의 내소사, 내장사, 선운사, 백양사, 금산사 등 유명한 천년고찰로 며칠을 함께 여행했다. “회사 일로 바쁠 텐데, 뭐 하러 휴가까지 쓰면서 이러냐?”라면서도 아버지와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보름달로 훤한 남도의 저녁 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산책하시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려서 유난히 잔병치레가 잦았던 필자는 꽤나 자주 병원과 약국 신세를 지곤 했는데 전혀 약발이 듣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엄마 손이 약손”이라며 아픈 부위를 한참동안 주물러 주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아픈 게 씻은 듯 낫곤 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된장 죽을 쑤어 내 머리카락을 칼로 뜯어 된장 죽에 넣으며 완쾌를 기원하는 주문을 하셨고, 나의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된장 죽을 들고 뒷산에 올라 “잡귀야 물러가라”며 뿌리셨다. 그때도 어머니의 머리 위에는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은 꿈에 자주 나타나셨다. 어떨 때는 돌아가시기 직전의 모습으로, 어떨 때는 필자가 어렸을 때 젊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꿈에 나타나시는 게 뜸해지더니 가장 최근에 나타나신 때가 아마 재작년쯤인 것 같다. 어느새 어머니도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되셨다. 사람도 못 알아보고 귀도 어두워지고 말도 어눌하게 하시는 게 아닌가. 그런 어머니에게 답답하다고 역정을 내고 몽니를 부리다가 잠에서 깼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사람 없는 곳을 찾아다니며 꺼이꺼이 울었다.

불교 경전 중에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 있다. 내용 중에는 부모님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열 가지 나열한 십대은(十大恩)이 있는데, 이를 토대로 작사한 것이 ‘어머님의 은혜’다.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어머니의 은혜는 헤아릴 수 없고, 평생을 갚아도 다 못 갚는 것이거늘 오랜만에 꿈속에서 찾아온 어머니께 효도는 못할망정 못난 짓을 한 내가 너무 미워 울었고 왠지 모를 회한이 북받쳐서 하루 종일 울었다.

지금도 찬바람이 부는 달 밝은 밤이면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진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굳이 김소월의 시를 인용 안 해도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밤에 따뜻한 아랫목에서 어머니랑 둘이 앉아 있었던 회상만으로도 가슴이 촉촉해진다. 며칠 후면 가을 장맛비도 그치고 보름달이 온 누리를 두루 밝히며 이 못난 자식의 가슴도 환히 비춰 주겠지.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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