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여행
아주 특별한 여행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0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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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추석을 이주일 남짓 앞둔 주말에는 시댁 식구들이 모두 모여 함양으로 벌초를 하러 떠난다. 보통 벌초는 남자들의 몫이기에 굳이 가족이 다함께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시댁은 20여 년 전부터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즐기고 추억도 만들 겸 벌초여행을 연례행사처럼 치르곤 한다.

이번에는 멀리 제주도에서 일하고 있는 둘째 시동생도 와서 더 기쁜 시간이었다. 산청에 있는 달마실 펜션에다 방을 얻은 우리 가족들은 별들이 하나 둘 인사를 건넬 때쯤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시어머님이 정성으로 만들어 오신 요리는 단연 인기 최고였다. 73세의 연세에도 손자, 손녀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으신 할머니의 마음을 그 누가 따를 수 있을까.

시어머님은 닭발요리와 식혜를 만들어 오셨다. 처음에는 닭발요리를 먹질 못했는데, 가족들이 너무 맛있게 먹기에 어느 날 조심스레 먹어보니 양념 맛이 일품이었다. 양념을 밥에 쓱쓱 비벼서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삼겹살 파티 사이사이 고구마도 구워먹으며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삼형제의 가족들과 시어머님까지 합치면 모두 14명이나 되는 참 단란한 가족군단이다.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고 배려하는 마음들이 오고가다 보니 이보다 더 따뜻한 만남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남편의 고향동네 사람들은 이런 우리 가족들을 무척 부러워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날 새벽, 또로롱 이슬을 달고 있는 강아지풀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산책길에 나섰다. 배추씨와 무씨도 올라와 연둣빛 여린 몸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올해는 태풍이 많이 안 온 탓에 대추를 달고 있는 가지가 무척 힘겨워 보였다. 그 중 몇 개는 볼이 발그레한 것이 가을볕을 제법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시어머님과 나의 발길은 어느새 당신의 모교인 금서초등학교 운동장을 향하고 있었다. 시어머님은 타임머신을 타고 60여 년 전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운동장을 천천히 걸으셨다. 신기하게도 운동장의 흙은 그렇게 폭신폭신할 수 없었다. 발에 닿는 느낌이 좋아서 오래도록 걷고 싶었다.

아침식사 후에 뱀사골 가까이에 사시는 시고모님을 뵈러 갔다. 시고모님이 사시는 곳은 해발 500미터쯤은 되어 보이는 심심산골이다. 대문 입구에서는 추자(호두)가와 함께 시골 아낙의 엉덩이만한 늙은 호박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유난히 정이 많은 시고모님은 우리가 갈 때마다 직접 꺾어서 말린 고사리며 온갖 푸성귀들을 정겹게 챙겨 주신다. 시고모님 댁 마루에 앉아서 앞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유토피아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코끝에 감기는 신선한 공기가 사뭇 다르다. 지리산의 공기를 아주 천천히 들이마시면 죽었던 세포가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감싼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울산으로 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유자효 시인은 ‘가정’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저음으로 말할 것/ 잔잔하게 웃을 것//

햇빛을 가득하게/ 음악은 고풍으로//

그리고 목숨 걸고/ 그 평화를 지킬 것”.

남편은 언제나 가족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런 그가 기획한 벌초 가족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도 특별한 여행이고, 서로 정을 쌓아갈 수 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사촌들끼리도 어려서부터 자주 함께 어울려야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법이다.

맏며느리 역할이 조금 미덥지 못할 때도 있는 나를 예뻐해 주시는 시어머님이 고맙고, 나를 믿고 잘 따라주는 동서들도 참 고맙다. 지금은 지리산 골짜기 어느 산기슭에 잠들어 계신 시할머님과 시아버님께서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흐뭇해하실까.

천애란 재능시낭송협회 울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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