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손발 묶는 환경규제 완화해야
기업 손발 묶는 환경규제 완화해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0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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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우리나라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는 명백한 경제보복이다. 게다가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심해도 너무 심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취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도 너무 감정적이다. 양국 모두 이성을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친일(親日)과 항일(抗日)을 가려 편 가르기 하는 이분법 자체가 미래의 조국(祖國) 번영을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민감정을 항일로 몰아넣어 정치적 이득을 노린다면 그건 더욱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극일(克日)이다.

더 늦기 전에 일본보다 앞선 기술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이미 스포츠계에선 극일에 성공했다. 수영과 육상 등 몇몇 종목을 제외하곤 일본을 넘어섰다. 수영과 육상은 많은 시간과 집중투자가 필요한 종목이다.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과학기술계도 마찬가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더욱 그렇다. 드론, 로봇, 3D프린팅, 친환경차(수소차·전기차) 모두 소재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기술경쟁력이, 기업경쟁력이 국력인 세상이지 않은가. 지금은 전 세계가 총성 없는 전쟁터다. 우리 스스로 개발한 독자기술 없인 여전히 종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소재의 국산화에 나서야 한다. 당연히 R&D(연구개발) 지원과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

또한 떡하니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은 속히 제거해야 한다. 소재 개발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걸림돌 제거는 의지와 식견만 있으면 가능하지 않은가. 꽉 막힌 환경규제로 인해 중소기업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정부는 말로만 중소기업 육성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바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과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이 기업의 숨통을 옥죄는 주범이다. 수천여 개 화학물질 정보 등록이 의무화되면서 기업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 부담은 감히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다.

화평법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구미 불산 사고를 계기로 제정됐다. ‘화학물질을 더 엄격하게 관리하자’는 취지는 나무랄 게 없다. 이 법을 통해 화학물질 명칭, 제조·수입량, 용도, 성분 등 온갖 화학물질 정보를 환경부에 등록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화평법은 유럽연합(EU)의 ‘화학물질 등록 평가제도(RECAH)’를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규제 강도는 훨씬 세다. 새로 도입되는 화학물질의 경우 EU는 1톤 이상 유통하는 경우만 등록 의무를 주지만 한국은 100㎏ 이상이면 모두 적용된다. 화관법도 만만치 않다. 화평법 못지않게 부담이다. 화관법은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에 안전진단 의무를 규정한 법으로서 국내에서 제조하거나 수입한 모든 화학제품의 확인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여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이다. 화평법 개정안으로 기업이 등록해야 할 물질 종류가 기존 500여 개에서 7천여 개로 급증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컨설팅 비용을 포함하여 최대 1억 2천만 원이 들어간다. 이런 비용이 부담되는 중소기업은 범법자로 전락하거나 아예 화학물질 제조 및 수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만난 중소기업 대표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신물질을 개발하려면 범법자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거나 “가뜩이나 경기부진에 수익성까지 떨어졌는데 이런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니 신소재 개발은 아예 포기하려고 한다”고. 결코 엄살이 아니다.

속히 걸림돌을 치우자. 화평법과 화관법의 유해물질 정의가 서로 다르므로 관련 법률을 하나로 정비해야 한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존 다른 법규와 중복돼 과잉규제라는 지적도 많으니 재검토하자. 일본 수출규제로 중소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된 만큼 이번 기회에 환경 관련 법률을 재정비해 기업 부담을 줄여주자. 화학물질 규제 강도를 보면 한국, EU, 미국, 일본 순으로 한국이 가장 강하다. 선진국보다 훨씬 강하단 얘기다. 결코 봐주란 얘기가 아니다. 사전 평가자료 제출 대상을 기존 화학물질이 아닌 신규 화학물질로 한정하고 규제를 일본 수준으로 완화하자. 진정 소재 국산화로 극일(克日)하려면.

이동구 본보 독자위원장, 한국화학연구원 RUPI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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