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가 앤드류스와 장생포
탐험가 앤드류스와 장생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9.0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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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채프먼 앤드류스’(1884.1~1960.3)는 미국의 유명한 탐험가이자 자연사연구자다. 딴 곳에서는 몰라도 울산 장생포에서만큼은 그런대로 먹히는 인물이다. 남구청에서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 옆에 그의 흉상을 세우고 고래문화마을에 홍보 공간까지 차려놓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주인공으로 알려진데다 장생포에 머문 적이 있고, ‘한국계 귀신고래’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양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체를 알고 나면 실망감이 클 수도 있는 법. 운 좋게도 그의 정체를 더듬어볼 기회가 생겼다. 울산대곡박물관(관장 신형석)이 <대외교류를 통해 본 울산>이란 제목의 개관 1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지난달 30일 울산박물관 2층 대강당에서 마련해 주었던 것.

발표주제 5건 모두 무게감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허영란 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의 <근대 울산, 혼종적 장소의 두 얼굴>은 흥미를 배가시켰다. 이 논문에서 그는 울산 견문기록인 일본인 소설가 ‘에미 스이인’(1869~1934)의 <실지탐험포경선>과 미국인 앤드류스의 각종 저술을 추적해서 나름의 유의미한 해석을 내린다. 에미 스이인에 대한 글은 이미 알려진 바 있어 잠시 감추기로 한다.

허 교수에 따르면 조선 해안에서 잡히던 ‘이상한 고래’(Korean devilfish) 이야기를 1910년, 일본에서 들은 앤드류스는 2년 후 울산 장생포를 찾는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50년간 자취를 감춘 귀신고래(gray whale)와의 연관성을 찾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허 교수는 그가 장생포에 머문 기간을 1912년 1월 5일~2월말로 추정한다. (앤드류스는 자신의 장생포 체류기간을 ‘6주간’이라 했으나, 일부 인터넷사전은 ‘1년간’으로 적기도 한다.) 앤드류스는 장생포에서 일본 동양포경회사의 도움으로 귀신고래 40여 마리를 조사했고, 전신골격 2건도 확보했다. (전실골격 1건은 지금도 워싱턴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앤드류스란 인물의 정체를 허 교수의 추적을 통해 짐작해 본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장생포 사람들)은 일본인과는 달리 야만적인 존재였다. 한국인을 경멸했던 에미 스이인처럼 그에게도 한국인들은 고래 뼈나 노리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그가 머물던 집 근처에 쌓아둔 첫 번째 전신골격이 하나둘씩 없어지자 그는 문에 구멍을 내고 감시에 나섰고, 두꺼운 면바지를 입은 한국인이 접근하자 총기를 쏘아 맞추었다. 총을 맞은 한국인은 미친 듯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고, 그 소문이 퍼지면서 쌓아둔 고래 뼈는 더 이상 없어지지 않았다.” 앤드류스는 고래 뼈로 국을 끓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은 허 교수 논문의 일부다. “장생포는 고래와 과학탐구를 매개로 이루어진 교류와 연결, 교차의 장소였다. 그럼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이 초국가적 역사를 울산이나 장생포의 지역사로서 어떻게 포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주 박약한 실정이다.…장생포라는 혼종적 장소는 우리에게 아직도 제대로 인식조차 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남구청에 대한 아쉬움도 감추지 않는다. “한국에서 그(앤드류스)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장생포 고래박물관 옆에 그의 흉상을 세운 울산남구조차도 그와 장생포의 인연에 대해 구체적인 조사·연구를 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모델이라는 유명세를 문화관광 콘텐츠로 활용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고래문화마을 ‘앤드류스가 머물렀던 집’ 홍보공간에는 다음과 같은 아리송한 글귀가 방문객들을 맞는다. “세계 최초로 ‘한국계 귀신고래’라고 명명한 업적은 코리언 신대륙 발견 이론과 함께 영원히 전달되고 있습니다.” 빈칸을 채우는 일은 남구청의 몫이 아닐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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