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씨 챌린지 - 제임스 카메론과 나
딥씨 챌린지 - 제임스 카메론과 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8.2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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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987년 2월로 기억된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에는 학교마다 단체 영화 관람이란 게 심심찮게 있었다. 초등학생 때는 없었는데 중학생이 되니 월말고사 및 기말고사가 끝나거나 방학 또는 새학기의 시작을 앞두고는 학교 전체가 낮 시간에 단체 영화 관람을 하곤 했었다. 그렇게 해서 본 영화가 <이연걸의 남북소림>을 시작으로 <후라이트 나이트>,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등이었다. 전부 중학교 1학년 시절인 1986년에 본 작품들이었다.

해가 바뀐 뒤에는 연초부터 단체관람이 있었는데 바로 <에이리언2>라는 작품이었다. 짧은 봄방학이 시작되기 직전, 아무 생각 없이 학교 친구들과 같이 보게 된 <에이리언2>는 정말이지 놀라웠다. 지구인들이 이주해 정착한 LV-426 혹성과의 연락이 두절되자 주인공 리플리(시고니 위버)와 1개 소대의 해병대가 혹성에 급파돼 정체불명의 에이리언들과 사투를 벌이는 <에이리언2>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보자마자 ‘내 인생의 영화’로 순식간에 등극했다.

솔직히 지금도 최고의 SF영화로 <에이리언2>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데 그 전까지 만화영화에서만 봐왔던 외계 괴물과 인간의 전투를 CG(컴퓨터 그래픽)도 없이 완벽하게 실사로 구현해낸 게 놀라왔던 것.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퀸 에이리언과 로봇을 연상케 하는 로더와의 한판 대결은 보는 내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바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의 첫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영화의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인지도 몰랐다. 그로부터 3년 뒤 난 카메론 감독을 제대로 알게 된다.

1991년 고교 2학년의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직전에 개봉한 <터미네이터2>는 개봉하자마자 울산에서도 난리가 났었다. 지금은 아득한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당시 <터미네이터2>를 상영했던 중구 성남동 천도극장(태화극장이었나?!)은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로 주말이면 하루 종일 100m가 넘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그 때는 또 지정좌석제가 아니어서 나 역시 관람 인파들 사이에 끼인 채로 서서 겨우 봤었다. 하지만 너무 재밌게 봐서 다리가 아픈 줄도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터미네이터2>를 통해 비로소 카메론 감독을 알게 됐다.

그 즈음 내겐 새로운 취미도 하나 생겼는데 바로 당시 인기 영화잡지였던 ‘스크린’과 ‘로드쇼’를 사보는 일이었다. 스크린과 로드쇼는 인터넷이 없었던 그 시절,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막 사보기 시작한 두 영화잡지는 당시 <터미네이터2>에 대한 기사로 거의 도배되다시피 했는데 CG영상혁명을 이뤄낸 카메론 감독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터미네이터2>로 인해 2년 뒤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 개봉하는 등 영화판에선 일대 CG혁명이 일어났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해 비디오로 <심연>이란 작품도 접했었다. 애로영화를 연상케 하는 제목 탓에 카메론 감독의 거의 유일한 망작이 됐지만 본 사람들은 알 거다. 이 영화가 얼마나 명작인지를.

기술적으로도 이 영화에서 처음 시도된 CG가 있었기에 <터미네이터2>도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1994년 여름, 입대 전에 봤던 <트루 라이즈>를 거쳐 1998년 드디어 <타이타닉>을 보게 됐다. 딱히 설명이 필요 없는 이 영화는 국내에서 그해 2월에 개봉했지만 여름이 끝날 때까지 극장에서 상영됐던 걸로 기억된다. 또 그로부터 12년 뒤인 2009년 그는 <아바타>를 내놓았고, 이번에는 3D영상혁명을 이뤄냈다.

다큐멘터리 영화 <딥씨 챌린지>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를 세계 최초로 탐사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실제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전속 해양 탐험가이기도 한 카메론 감독은 10대 시절 영화보다 해양탐사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에는 그가 작품을 낼 때마다 혁명을 이뤄냈던 이유가 더 잘 드러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의 열정적인 탐험정신이었다. 그게 스크린에서는 실험과 도전 정신으로 구현돼 혁명적인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영화 속에서 카메론 감독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영화감독을 부업으로 하는 탐험가인지, 아니면 탐험가를 부업으로 하는 영화감독인지 가끔은 나 스스로도 헷갈린답니다.”

그랬거나 말거나 <아바타> 이후 내가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바타> 2편의 개봉을 기다리는 일이다. 아니 총 5편으로 기획된 <아바타>가 종결될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하는데라는 농담을 우스갯소리로 던지기도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가 목숨을 걸고 까마득한 심연으로 들어갈 땐 혹시나 싶은 마음에 걱정까지 되더라. 하지만 그는 결국 11km에 이르는 심연의 바닥까지 닿는데 성공한다. 그곳은 고요했다. 마치 인간의 마음 깊은 곳처럼.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참으로 멋있는 인생’이라는 글귀가 요란하게 스쳐 지나갔다. 카메론 감독은 올해 65세다. 감독님. 오래오래 사시길.

2017년 11월30일 개봉. 러닝타임 91분.

취재1부 이상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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