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주박물관 ‘금성의 남산과 헤이조쿄의 동산’ 학술대회
국립경주박물관 ‘금성의 남산과 헤이조쿄의 동산’ 학술대회
  • 김보은
  • 승인 2019.08.22 2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왕경내 택지 줄어들어 남산에 사찰 건립”

경주 월성(月城) 남쪽 남산에는 수많은 신라시대 절터와 석탑이 있다. 이곳에 유독 불교 유적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차순철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은 국립경주박물관이 22일 개최한 ‘금성(金城)의 남산(南山)과 헤이조쿄(平城京)의 동산(東山)’ 학술대회에서 남산이 불국토(佛國土)가 된 연유를 분석해 발표했다.

이날 차 단장은 “남산에 건립한 사찰 중 창건 시기가 이른 곳은 선방사지, 장창곡 제10사지, 전(傳) 신인사지 등으로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사찰 입지가 계곡 안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주 남산에 사찰이 건립된 원인으로는 기존 왕경 내 택지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며 “새롭게 불사를 할 수 있는 남산에 사찰을 건립하고 불탑을 봉헌한 일은 공양주 자신과 가족의 복을 비는 기원행위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라 경덕왕이 중국 당 대종을 위해 만든 만불산(萬佛山)에 관한 삼국유사 내용을 떠올려보면 남산이야말로 신라인이 생각한 불국토를 구현한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학술대회에서는 차 단장을 외에도 한국 학자 4명, 일본 학자 6명이 발표했다.

이용현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왕경 내 백률사나 선도산 정상 마애삼존불은 왕실이 불교를 공인하고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이지만, 왕경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단석산 신선사는 신라 육부 중 하나인 모량부의 성산(聖山)에 세운 지역세력 불교 신앙 거점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남동신 서울대 교수는 경주 불국사가 석가모니 귀향 설법을 바탕으로 삼고, 당대 중국 왕궁 건축을 차용해 조성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김보은 기자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