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생각] 휴지통 없는 화장실
[독자의 생각] 휴지통 없는 화장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8.2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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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없는 화장실’, 아직은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진다. 화장실 안쪽 문 앞에 붙어 있는 ‘사용한 휴지는 변기에 버려주세요’, ‘화장지는 휴지통에 버려주세요’라는 서로 상반된 글귀가 화장실마다 달라서 혼란을 겪고 있다. 어쩌다 두 개의 문구 중 어느 것도 안 붙은 경우에는 더욱 난감해서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도입된 휴지통 없는 화장실이 왠지 생뚱맞게 다가오는 것은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어색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여서 그런지 생광스럽고 과연 이것이 정도(正道)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2017.7.26 공포, 2018.1.1. 시행)에 따르면 바닥면적이 2천㎡가 넘는 건축물인 병원, 학교, 전시장, 공공장소, 다중시설 등은 의무적 적용 대상이다. 일반인들의 생활반경 안에 있는 건축물인 동네병의원, 식당, 근린생활시설 등은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도입 여부는 자율에 맡기고 있다.

새로운 법을 제정할 때 도입배경과 입법취지의 정당성은 확보했다 하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은 관계법의 내용을 잘 모르고 쉽게 납득하지도 못해 혼란스럽고 헷갈리기 일쑤다. 전 국민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문제인데 법 시행 이전에 공감대 형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선진국에선 이런 화장실문화가 벌써부터 뿌리내리고 검증된 것이어서 우리나라가 이를 벤치마킹한 것이고,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서둘러 도입했을 것이다.

사용하는 장소마다 지시문을 보고도 실수하고 습관 때문에 또 실수가 거듭되니 괜히 기분이 언짢아져 아직은 시민정서와도 동떨어진 느낌이다. 더구나 가정에서는 여전히 휴지통을 사용하고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물에 녹는 휴지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건더기가 있는 채로 계속 물을 내리다 보면 나중에 배관이 막히는 문제는 생기지 않을지 염려가 된다. 가끔 화장실에 물이 잘 내려가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것을 목격할 때면 벌써 올 것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우려가 되고 맘도 무거워진다. 하수에 이물질이 함께 쓸려 내려가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병목현상도 생겨날 터이고, 물리적으로 배관 자체가 감당해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 종전에 수돗물을 절약하기 위해 설치한 대변기와 소변기의 절수 버튼을 구별해서 사용하던 장치도 이젠 무용지물이 되었고, 물의 사용량은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다.

수십 년 전부터 땅과 건물내부에 묻혀있는 하수배관이 막히거나 하천이 오염되지나 않을지 우려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하천 오염이나 대지 오염이나 매한가지이긴 하나 전자가 더 심각하다고 본다. 땅은 자정능력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휴지는 썩어서 거름이 되겠지만 하천에서는 그대로 떠내려가 우리가 먹는 물과 생명체들에게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피해를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다.

물론 화장실에 휴지통을 두지 않음으로 해서 벌레의 서식 환경과 악취를 없애고 휴지통을 비우고 청소하는 번거로움을 줄인 것은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또 미관상 깨끗하고 실내공간도 쾌적하여 환경 면에서 개선된 점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따져보면 규모가 큰 대상건축물에는 대부분 청소원을 두고 있는 실정이어서 인건비 절감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고 본다. 또 우리에겐 어떤 반사적 이익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시행 1년 남짓해서 아직은 별 문제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와 사후관리에 대한 매뉴얼은 잘 갖춰 대처해 나가리라 믿는다. 아쉬운 부분은 휴지통 없는 화장실 도입에 앞서 사용자들의 이해와 공감대 형성이 먼저임에도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나타난 법을 따르고 지켜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아무튼 휴지통 없는 화장실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다. 당분간 과도기의 혼란과 불편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미 도입된 정책은 되돌리기도 어렵거니와 거스를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소한 문제라도 즉각 수정·보완해가며 불편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모두에게 안도감을 줄 것이다. 각자 즐겨 입는 편안한 옷처럼 선진화된 화장실문화가 우리의 일상 속에 서서히 용해되어 가급적 빨리 정착되길 바란다.

우진숙 울산시 남구 삼산중로 6번길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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