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의 자연산책] 남도 배롱나무 기행
[조상제의 자연산책] 남도 배롱나무 기행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8.1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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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천하제일 아름다운 배롱나무 숲을 볼 수 있다 하니 가볼 수밖에요. 옥 굴러 가는 소리의 샘물, 그 샘물이 모여 이룬 연못, 연못을 내려다보는 정자,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50여 그루의 배롱나무, 연못 속에 붉게 물든 배롱나무 꽃과 뭉게구름. 담양 명옥헌(鳴玉軒). 주변에 핀 배롱나무를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들은 배롱나무를 백일홍, 목백일홍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백일홍은 그 꽃이 백일동안 붉게 핀다는 뜻일 게고, 목백일홍은 초화류 백일홍이 있으니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부르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원예학회에서는 최근에 배롱나무를 백일홍으로, 초화류 백일홍을 백일초로 부르자고 했다고 합니다. 아마 조경하시는 분들이 워낙 배롱나무를 백일홍으로 많이 부르니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배롱나무의 표준명(국명)이 배롱나무라는 것입니다. 배롱나무의 어원이 백일홍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헷갈리지 않도록 배롱나무로 부르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배롱나무를 중국에서는 자미화(紫薇花)라고 합니다. 아마 배롱나무의 기본색이 자색(紫色)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색 백일홍을 자미(紫薇), 흰색 백일홍을 백미(白薇) 또는 은미(銀薇), 붉은 색 백일홍을 홍미(紅薇), 비취색 백일홍을 취미(翠薇) 등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니 꽃 이름에 붉은색을 이미 규정하고 있는 백일홍은 여러 가지 색을 가진 배롱나무를 지칭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배롱나무 중에서도 보라색 계통의 취미(翠薇)와 흰색을 띤 은미(銀薇)를 가장 으뜸으로 칩니다.

문득 이맘때 남목초 화단을 밝게 비추며 진한 향기를 쏟아내던 취미(翠薇)가 떠올랐습니다. 하루는 차를 몰아 남목초로 내달렸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방학 전이었지만 흐드러지게 핀 보라색 취미의 진한 향기는 바람을 타고 나를 반기고 있었습니다.

천하의 배롱이를 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첫날은 순천 선암사에서 먼저 배롱을 대하기로 했습니다. 절간은 붉게 물들었는데, 산제비나비는 먼저 저를 누리장나무로 안내했습니다. 누리장은 누린내가 아니라 진한 백합 향기로 나를 유혹했습니다. 유혹을 떨치고 홍미(紅薇)를 대하니 둥그런 머리 위에 뭉게구름을 이고 붉은 미소로 다가옵니다.

강희안은 ‘비단같이 아름답고 노을처럼 고운 홍미가 뜰을 비추며 사람의 눈을 현란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성삼문은 ‘어제 저녁 한 송이 지고, 오늘 아침 한 송이 피며, 백일을 이어가니 내 너를 대하며 술잔을 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신경준은 순원화혜잡설(淳園花卉雜設)에서 ‘오늘 하나의 꽃이 피고 내일 하나의 꽃이 피며 먼저 핀 꽃이 지려할 때 그 뒤의 꽃이 이어서 피어난다. 많고 많은 꽃잎을 가지고 하루하루의 공을 나누었으니 어찌 쉽게 다함이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배롱은 감히 눈부시게 아름답게 백일을 가는 여름철 가장 존재감 있는 꽃임에 분명합니다.

순천이 가까워지니 길가엔 현저히 대나무와 붉은 빛이 늘어납니다.

이튿날 내비에서 명옥헌을 치고 그 곳으로 향했습니다. 어 그런데 나타난 곳은 죽녹원이었습니다. 안내원에게 물으니 죽녹원에도 가짜 명옥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명옥헌을 재현해 놓은 듯합니다. 표를 물리고 다시 발길을 돌려 명옥헌으로 행했습니다.

35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에 천하절경 배롱 숲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마을을 지나 작은 언덕을 넘자 산자락에 붉게 물든 배롱나무 숲이 나타났습니다. 연못 위 연꽃 사이사이에는 배롱나무 꽃잎이 물들고, 연못 속에는 뭉게구름과 함께 또 하나의 배롱나무 붉은 숲이 그림처럼 펼쳐졌습니다.

울산에도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홍미, 백미, 취미의 가로수 길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백만 그루 배롱이 심기를 하는 것은 어떠한지요?

조상제 범서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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