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 협력·구매조건부 활성화, 대·중기 협업생태계 조성해야”
“연구개발 협력·구매조건부 활성화, 대·중기 협업생태계 조성해야”
  • 정인준
  • 승인 2019.08.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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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진단】 소재 국산화 이렇게 한다 - ③ 대기업-소재기업 상생 생태계 만들자
지난 13일 한국화학연구원 울산본부에서 열린 간담회. 왼쪽부터 피유란 임호 대표, 루피사업단 이동구 단장, 에스피씨아이 김선중 대표, 한국화학연구원 조득희 박사. 	최지원 수습기자
지난 13일 한국화학연구원 울산본부에서 열린 간담회. 왼쪽부터 피유란 임호 대표, 루피사업단 이동구 단장, 에스피씨아이 김선중 대표, 한국화학연구원 조득희 박사. 최지원 수습기자

 

지난달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SK 최태원 회장에게 불화수소와 관련해 “진작에 함께 개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의 이 말은 대한민국이 소재강국으로 가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13일 한국화화연구원 울산본부에서 국산 촉매를 개발한 에스피씨아이(S-PCI) 김선중 대표이사, 피유란(PURAN) 임 호 대표이사, 루피(RUPI)사업단 이동구 단장, 조득희(공학)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만났다.

국내 촉매개발 대표들을 만난 것은 소재개발의 어려움에 대한 생생한 얘기를 듣기 위해서다. 촉매는 화학공정의 핵심으로 국내 자립도는 5%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촉매 대체 시장은 크지만 대기업들이 안 사주고 있어 ‘고군분투’하는 분야기도 하다. 에스피싸아이와 피유란은 뛰어난 기술력으로 성능이 최고인 촉매들을 개발해 사업영역을 넓히며 성장하고 있다.

‘에스피씨아이’는 고분자용 메탈로센 촉매를 개발했다. 메탈로센 촉매는 차세대 고분자 폴리머 생산의 강도, 탄성, 투명성 등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반응물질이다. 이 촉매를 상용화한 기업으로는 미국의 엑슨과 일본 미쓰이 석유화학, 미쓰비시 화학 등 전 세계적으로 10여 곳에 불과하다. 국내에선 에스피씨아이가 유일하다.

에스피씨아이 김선중 대표는 대기업의 터무니 없는 행태를 폭로했다.한 대기업이 전자소재를 개발하자며 접근해 처음에는 소재의 순도를 ppm(100만분의 1을 요구하더니 정작 생산에 들어가려 하자 ppb(10억분의 1)로 요구해 연구개발을 철수했던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협력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고 있다”며 “대기업들이 중소·벤처기업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대기업의 주문에 맞춰 사업영역을 구축해 왔다”며 “지난 세월을 통해 확보된 신뢰성을 밑바탕으로 새로운 전문영역인 촉매를 개발해 우리만의 시장을 찾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유란’은 폴리우레탄 발포촉매를 국내서 유일하게 만든다. 전량 수입대체 촉매로 외국산보다 성능이 더 뛰어나다. 그렇다면 피유란이 국내 시장을 석권했을까?

피유란 임 대표는 “한 기업에게 매출이 의존됐더니 가격이 덤핑처럼 가격이 내려 갔다”며 “일부러 기업들에게 10%씩만 촉매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제품 때문에 외국기업 촉매 가격이 많이 내려가 지금은 외국기업들로부터 제발 가격 경쟁 자제를 부탁한다는 말까지 듣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촉매가 좋아 대기업 연구부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기술을 개발했다. “세계에서 유일한 촉매를 만들어 최고의 촉매 기업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 대표의 꿈은 대한민국의 현실 앞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임 대표는 “현행 법대로라면 세상에 없는 신물질을 만드는 건 불법”이라며 “화평법과 화관법이 소재개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죽 했으면 동남아 쪽에 공장을 지어 생산물을 한국으로 수입해올 계획까지 세웠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화학연구원 조득희 박사는 촉매산업의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했다. 조 박사에 따르면 10여년전 화학연구원에서 AN(아크릴로니트릴)생산 촉매를 개발했다. 일본과 미국산 촉매보다 2배 이상 효율이 좋았다. 당시 관련 대기업이 테스트까지 마쳤다. 그러나 생산공정이 외국 라이센스에 맞춰져 있어 국산 촉매를 적용할 수 없었다. 이후 이 기업은 물적·환경적으로 큰 손실을 봐야 했다.

조 박사는 “우리 석유화학공단이 처음 설립됐을 때 들여온 생산공정의 라이센스 기간이 모두 완료돼 국내 생산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며 “대기업들이 전향적으로 촉매의 국산화와 생산공정을 검토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루피사업단 이동구 단장은 “소재 국산화 키를 쥐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업하는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 하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대기업은 지금도 갑을 관계를 예상하고 있고, 이를 관행처럼 적용해 왔다”며 “이번 기회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자적 관계가 되지 않으면 그 영향은 소재의 종속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만나 신뢰를 회복 하고 공동의 가치를 추구할 네트워크 또는 포럼, 위원회 등을 만들어 이를 사회·경제적으로 제도화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울산지방중소벤처기업청 하인성 청장은 전화통화에서 “기업현장에서 말하는 애로사항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해 성장의 기회로 삼으려면 대기업의 소재흐름 상에 있는 중소기업 또는 스타트업의 제품을 대기업이 써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생각들은 울산시 중심으로 롯데, SK, 중기청, 울산TP, 울산화학연구원, 울산생산기술연구원 등이 동참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R&D사업을 통해 대기업, 중소기업, 연구기관, 대학교가 협업하고 실증센터에서 인증을 받아 상용화까지 원스톱으로 진행되는 생태계가 국내 최초로 추진된다”고 밝혔다.

정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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