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이유 있는 경제침략
일본의 이유 있는 경제침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8.13 2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가 어릴 때 어른들이 하던 말이 있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일본은 일어난다.”

아베가 잘 봤다. 70년 전만 해도 자기네들이 지배했던 조선 산업이 도리어 한국에 따라잡히고 있다. 중국은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 오래고, 체급이 달라져 지금은 미국과 대거리하는 중이다. 경제 분야를 잠식해 들어오는 한국은 때때로 정치적 기량도 일본을 능가한다. 내버려두면 한·중·일 가운데 일본이 3등 하게 생겼다. 이러다 북·미가 종전선언이라도 하는 날에는 동북아 정세 주도권이 완전히 한반도로 넘어간다. 판을 흔들어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늦을 수도 있다.

일본의 150년 생존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1868년 명치유신에 성공한 이후 일본은 일관된 국제정치노선을 유지해 왔다. 세계 패권국과 손잡고, 아시아 맹주 노릇을 하는 것이다.

1902년, 일본은 당시의 최고 패권국 영국과 조약을 맺고 우방이 되어 중국과 조선 지배를 약속받았다. 1905년에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으로부터 조선을 보장받는 보험도 들었다.

1차 대전이 나자 일본은 우방들에게 물자를 납품해 엄청난 부를 쌓으며 제국의 기틀을 공고히 했다. 1940년에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한다는 독일,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맺고 대동아 공영권, 아시아 침략권을 보장받았다. 패전 5년 후 한국의 병참기지 노릇을 하더니 연이은 월남전 특수로 상당한 부를 누렸다. 교전국이던 미국이 은혜의 나라로 변신했다. 미국은 아시아 공산화 저지선으로 일본을 택했고, 일본은 다시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되었다.

좋은 시절은 금방 간다. 2010년,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되었다. 일본이 1968년 독일을 뛰어넘고 42년간 지켜왔던 자리다. 한국의 도약은 더 뼈아프다. 반도체 시장에서 2013년 한국이 일본을 누르고 세계를 제패했다. 이즈음 조선, 디스플레이, 정유 분야도 한국이 앞서갔다. 더욱이 일본의 세계적 전자회사 다섯 개가 삼성에 무너졌다. 수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한국을 밀어내지는 못했다. 특히 반도체는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돈 먹고 돈 먹는 치킨게임에서 패했다.

자존심이 무너져 내린다. 중공업, 철강 등 기간산업마저 한국의 추격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인들이 머리 숙이며 기술을 배워 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시장논리만으로는 제압이 안 될 지경이 되었다. 동북아에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시기인데도 일본이 낄 자리가 마땅찮다. 근대화 초기인 1885년,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는 탈아론(脫亞論)을 처음 주창할 때 한국과 중국을 나쁜 친구에 비유했다. 그 말은 예언이 되어 지금까지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장차 이 두 나라가 일본을 아시아의 상전으로 모실 일은 없다. 트럼프의 행보는 더 복잡하다. 어차피 키워주어도 일본의 힘으로 동북아를 정리할 수는 없으니, 미국이 직접 나서야 한다. 아베는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으로 달려가 트럼프에게 아양을 떨지만 트럼프는 환호와 박수를 아베와 나눌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키워놓으면 미국 잡아먹을 것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군사 재무장까지는 눈감아줄 테니 미국의 용병이나 하라는 것이다. 아베의 무대는 아베가 만들어야 한다.

도발적인 한국을 무릎 끓게 만들고 동북아에서 일본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이 아베의 선택이다. 강제징용 관련 배상에 관한 한국 사법부의 2018년 판결을 빌미로 반도체 소재를 못주겠단다. 또 북한에 몰래 팔아먹는다는 이유로 남한을 백색국가에서 제외시켰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만 남북한의 심상찮은 조짐이 일본에 빌미를 주었다. 이 분쟁이 계속되면 한국과 일본경제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 일본 참의원선거, 한국 사법부 판결은 아베가 도발하는 계기는 될 수 있어도 원인은 되지 못한다.

내력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 아베는 조부와 외조부의 길 가운데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의 길을 선택했다. 기시는 왜정(倭政) 당시 만주국 고위관리를 거쳐 일본 내각의 군수차관과 상공장관을 지낸 A급 전범이다. 기시는 1952년 현재의 자민당을 만들었고 일본이 재무장하도록 헌법 개정을 주장했다. 이 DNA를 물려받은 아베의 아시아 패권을 향한 도발은 일본 주류정치의 일관된 신념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그런 아베를 선거에서 여러 번 선택했다. 아시아 도발은 그들의 역사적 유전이다. 근대 이후 한반도와 일본은 대등하게 평화로웠던 적이 없다. 한국이 한 수 아래에 있을 때만 협력이 가능했다. 일본은 자기들이 필요할 때 거리낌 없이 한반도에 전쟁을 걸어 왔다. 오래된 대물림이다.

아베는 미국과 손잡고 경제·군사강국으로서 동북아의 패권을 거머쥐려고 한다. 한국이 더 커지면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러니 미리 제압해야 한다. 아베의 이유 있는 선택에 대한 한국의 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조국은 민정수석 시절 청와대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친일파이고, 찬성하는 사람은 독립투사라 했다. 이런 양분론이 어디 있나. 정부와 국민은 이런 때일수록 감정을 앞세운 극한대립은 삼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김옥길 서예가·예학자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