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우리 - 운명보다 인연이 더 좋은 이유
먼 훗날 우리 - 운명보다 인연이 더 좋은 이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8.08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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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먼 훗날 우리'의 한 장면.
영화 '먼 훗날 우리'의 한 장면.

 

사랑이 운명이라면 우정은 인연이다. 사실 친구는 선택할 수가 없다. 그렇잖은가. 당신은 자신이 선택해서 친구가 된 경우가 있는가. 태어나보니 우리 동네에 내 또래 애들이 있었고, 난 그 애들과 친구가 됐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우리 반 친구들이 내게 주어졌고, 난 또 다시 그 애들과 친구가 됐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도 다 마찬가지였다. 취업해서 들어간 회사도 마찬가지. 나 역시 함께 입사한 첫 직장 동기들과 아직도 가끔씩 연락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렇게 친구는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내가 송중기나 박보검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연이 있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

물론 사랑은 그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한다. 인연으로는 부족한 사랑은 운명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려면 운명에 이끌려 자신의 영혼을 탈탈 털어버려야 한다.

나를 향한 자존심과 이기심이 구심력(求心力:원 운동에서 원의 중심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라면 상대방에게 끌리는 힘은 구심력과 반대로 작용하는 원심력(遠心力)이라 할 수 있다. 이 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게 바로 운명이 아니겠는가. 대체로 사랑은 인연에서 시작돼 운명으로 완성된다. 허나 운명은 잔인하다. 인연의 끝은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운명의 끝은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만다. 뭐든 깊어지면 아프다.

<먼 훗날 우리>에서 두 주인공 린젠칭(정백연)과 팡샤오샤오(주동우)도 연인관계가 되면서 온통 눈물투성이였다. 2007년 춘절에 귀향하는 기차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둘은 북경에서 성공을 꿈꾸며 계속 인연을 이어간다.

한 동안 둘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였지만 객지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다보니 결국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건 운명이었다. 린젠칭은 팡샤오샤오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었고, 팡샤오샤오는 다른 남자와 사귀는 족족 잘 안됐다. 연인 사이가 되자 한 동안 둘은 한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지독한 가난이 둘의 발목을 잡았던 것. 사실 그것도 운명이었다.

팡샤오샤오는 린젠칭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린젠칭은 팡샤오샤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괴로워했다. 결국 팡샤오샤오는 린젠칭에게 “헤어지면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만 남긴 채 그를 떠나고 만다. 그러고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둘은 우연히 북경행 비행기에서 운명처럼 재회를 하게 된다.

때마침 폭설로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둘은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함께 하룻밤을 묵게 된다. 둘은 지난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 들게 되고 그러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게임 프로그래머로 크게 성공한 린젠칭에겐 이젠 가족이 있었고, 팡샤오샤오는 아직 혼자였다.

세상 모든 인연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즉시 끈이 생긴다. 린젠칭과 펑샤오샤오 사이에 생긴 인연의 끈은 연인으로 발전했다가 서로 헤어지면서 끊어진 듯 했다. 하지만 10년 뒤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그 끈은 다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화면은 온통 흑백이다. 대신 지나간 둘만의 추억이 화면을 메울 때는 컬러로 바뀐다. 10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이 비록 같은 공간에 있지만 사랑이 식은 터라 흑백일 수밖에 없었을 것. 그렇게 과거가 컬러고 현재가 흑백인 아이러니 속에서 둘은 점차 사랑이 아닌 ‘사람’을 보게 된다. 호텔방을 나온 뒤 펑샤오샤오가 눈물을 흘리며 린젠칭에게 말한다. “I Miss You.” ‘니가 그립다’는 뜻이 아니다. ‘너를 잃었다’는 뜻이다.

물론 ‘잃어버린 너’는 사랑으로서의 린젠칭이 아니었다. 사람으로서의 린젠칭이었다.

진정한 친구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이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잘 될 때 진심으로 같이 기뻐해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대다수가 힘들게 사는 냉혹한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아픔과 슬픔은 흔하디흔하기 마련. 슬픈 표정 지으며 건네는 위로 역시 흔해빠진 탓에 우린 가끔 타인의 고통을 통해 위로를 얻기도 한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는 기쁨이 귀한 세상에서 가족이 아닌데도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시길. 아예 없거나 있어도 많지 않을 거다. 하지만 리젠칭에게 펑샤오샤오는, 또 펑샤오샤오에게 리젠칭은 그런 존재였다.

마침내 10년 후 다시 만난 리젠칭과 펑샤오샤오의 현재도 컬러로 바뀌고 사랑이 진 자리에 남은 인연의 끈은 10년 전보다 더욱 선명해진다. 서로가 서로의 앞날을 밝혀주면서. 운명보다 인연이 더 좋은 이유? 눈부시진 않지만 은은하다. 그래서 오래 간다.

2018년 6월 넷플릭스 개봉. 러닝타임 119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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