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우지의 꿈은 ‘펠리컨’
가마우지의 꿈은 ‘펠리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8.0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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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일본이 한국의 주력 수출제품인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사용하는 자국산 소재 3종류의 수출규제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유감을 표했던 일본은 6월 일본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만 건너뛰더니 곧이어 수출규제 카드를 꺼냈다. 경제보복 조치라고 판단한 국민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우리 국민들의 불매운동을 비아냥하듯 더 큰 일을 벌였다. 지난 2일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것이다. 한국 경제를 더욱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와 비례해 우리 국민의 반일 감정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백색국가’란 일본이 자국의 안전 보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과 전자 부품 등을 타 국가에 수출할 때, 허가신청을 면제하는 국가를 가리킨다. ‘안전 보장 우호국’, ‘화이트리스트’, ‘화이트 국가’라고도 한다.

일본이 정한 백색국가에는 오스트리아 등 유럽 21개국과 미국·캐나다 등 북미 2개국, 호주·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2개국, 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가 포함돼 있다.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백색국가에서 제외되면 1천100여개 군수전용 가능성이 있는 전략물자 리스트 규제 품목 수출과 관련해 수출기업이 수출관리 프로그램을 사전 신고하고 경제산업성의 점검을 거쳐 인증을 받는 등 보다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28일부터 시행된다.

결국 한일 간 경제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국민들은 일본의 ‘경제침략’으로 규정하면서 경제적 주권과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일본제품 불매운동 집회가 열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불매운동 목소리로만 이 문제가 해결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본이 수출 규제 대상으로 지목한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의 필수 소재로 일본 의존도가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일본 수입의존도는 올 1~5월 수입액 기준 각각 91.9%, 43.9%, 93.7%에 달했다. 정부가 경제체질강화를 위한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5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면서 “국내 소재·부품·장비산업을 ‘가마우지’에서 ‘펠리컨’으로 바꾸겠다”고 한 것은 적절한 대응으로 보인다.

성 장관은 “우리 모두가 합심한다면 그간의 가마우지를 미래의 펠리컨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실속 없이 자기 몫을 뺏기는 가마우지가 아니라 부리에 저장한 먹이로 새끼를 키우는 펠리컨처럼 우리 것을 더 크게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가마우지’는 중국에서 가마우지의 목 아래를 끈으로 묶어 물고기를 잡아도 못 삼키게 한 뒤 어부가 가로챈 일화를 빗댄 말이다.

1980년대 말 일본 경제평론가인 고무로 나오키가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서 ‘가마우지 경제’라는 표현을 했다. 핵심 부품과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해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을 가마우지 고기잡이에 빗댄 것이다.

성윤모 장관은 8일 열린 공공연구기관 간담회에서 소재·부품 분야 핵심기술 조기 확보와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해 R&D 제도 틀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부디 소재·부품·장비산업이 ‘가마우지’에서 ‘펠리컨’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선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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