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언덕에서 (上)
잔디언덕에서 (上)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8.08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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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어도 나는/ 새들처럼 모이를 쪼고/ 높은 가지열매를 딸 수 없지만/ 새들이 마신 공기를 함께 마실 수 있다// 적어도 나는/ 나무들처럼 구름과 이야기하고/ 별들과 악수할 수 없지만/ 나무들이 쪼이는 햇빛을 더불어 쪼일 수 있다// (중략) / 새들아 고마워/ 오늘 아침에도 나를 깨워주고 …〔여름산책, 나태주〕

인생과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 나태주가 ‘여름’의 전경을 절절이 읊고 있다. 그렇다. 나도 그렇다. 일산 마두동 나만의 잔디언덕. 홀로 산책하며 이렇게 맛보니 저절로 삶의 의욕이 솟는다.

나는 ‘잔디언덕’을 좋아한다. 거기에 갈 때는 백팩 가방에, 따뜻한 강황 물 한 병에, 아끼는 작은 접이의자 두 개를 곁들어 들고 간다. 깔판 하나도 백팩에 넣고, 제법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출정하는 등반가처럼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선다.

손자와 한때 잔디언덕에서 나는 남색 의자, 그 아이는 빨강색 의자에 앉았다. 둘이서 나란히 사진도 찍고 즐거운 순간을 보냈던 아련한 그때를 잊을 수 없다.

아침 일찍 산책 나온 견공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그중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보고 깡깡 짖는다. 뭘 하는 아저씨인데요? 내가 궁금하나보다. 어이! 너하고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너는 너대로 살면 되고 난 나대로 살면 돼! 너무 딱딱하고 무례한 소린가? 대부분 강아지는 작고 귀엽다. 어떨 땐 진돗개같이 명석해 보이는 놈도 있지만, 아프리카 정글 속에 사는 고릴라같이 큰 놈도 있다.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야수로 분장한 인간의 모습 같다. 진짜 고릴라 한 마리 가격쯤 할 텐데….

꽤 멀리서 정겨운 새소리가 들린다. 꿈결에서나 들어볼 수 있는 소리다. 실은 먼 곳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고, 가까운 나무 위에서 나는 소리다. 부엉이 소리이기도 하고 소쩍새 소리이기도 하다. 매우 궁금하다. 한번 새박사 윤무부 교수에게 곰곰이 물어봤으면 한다. 그런 아름다운 소리가 어떻게 나냐고…. 아침이고 낮이고 밤이고 정겹게 들려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시골이 아닌 전원형 아파트단지에 이런 아름다운 새가 지저귀고 있다니 저절로 굴러들어온 또 하나의 행복덩이가 아닌가.

매화나무 아래에 어제는 매실이 여러 개 떨어져 있었다. 떨어진 지 한 며칠 됐나 싶다. 약간 노란 색깔의 매실도, 갓 떨어진 초록색 매실도 있다. 바로 옆에 까치 한마리가 그것을 의젓이 부리로 쪼고 있다. 그냥 먹어버리려는 건지, 아니면 먹을 걸 고르는 건지 알 수 없다. 스쳐가는 나를 발견하고 잔뜩 경계를 하지만 멀리는 도망가지 않는다. 은근슬쩍 다가가니 확 날아 가버린다. 아저씨! 미안해요! 별로 해코지도 하지 않았는데….

덩달아 참새 여러 마리가 매실나무 아래에 쪼르륵 모여든다. 짹 짹 짹… 가느다란 목청소리로 보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도 빠르기는 마치 물위를 걸어 다니는 ‘긴다리 소금쟁이’만하다. 풀잎처럼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화음을 구성지게 잘 낸다. 청아한 소리, 정말 아름답다. 들락날락하는 걸 보니 아마 바로 옆 물푸레나무 덤불이나 영산홍 덤불 속에서 어제 밤을 보냈을 것 같다. 어떤 모습으로 잠을 잤을까. 궁금하다….

어디에선가 까치 한마리가 날아와 소란스럽게 떠든다. 경계는 하지만 다른 새와 비교하면 의젓이 움직이는 것이 듬직해 보인다. 나는 종종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집 베란다에 헌식대를 매달아 놓는다. 먹이는 동그란 모양의 비스킷 20개 정도. 근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깔끔히 들고 갔다. 까치가 한 짓이 틀림없다. 엊저녁 입에다 물고 재빨리 날아가는 모습을 분명 봤기 때문이다. 아저씨! 저, 엊저녁부터 밤새 달콤 비스킷을 우리 집으로 하나씩 옮겨놓았어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下편으로 이어짐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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