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서진문 선생의 따님, 우리도 돌볼 생각”
“독립운동가 서진문 선생의 따님, 우리도 돌볼 생각”
  • 김정주
  • 승인 2019.08.06 21:15
  • 댓글 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재현 울산동구청년봉사단 단장
조재현 울산동구청년봉사단 단장.
조재현 울산동구청년봉사단 단장.

 

쓰레기 줍다가 봉사단 만들어

키 180cm, 몸무게 126kg의 조재현 울산동구청년봉사단 단장(31). 누가 봐도 우람한 체구다. 그렇다고 조직까지 몸집이 큰 것은 아니다. 현재인원이래야 고작 15명. 그러나 활동영역 하나만큼은 왜소하지 않다.

2014년에 이름표를 달았으니 올해로 6년차다. 동네친구들의 쓰레기 줍기가 모임의 시발이었다. “처음에는 일요일 아침에 쓰레기를 줍고 나서 커피 한 잔씩 나누던 친목 성격의 만남이었지요. 차츰 봉사할 일이 늘어나면서 ‘이왕이면 본격적으로 한 번 해보자’, 이렇게 의기투합한 것이 햇수로 6년을 채우게 된 겁니다.”

월 회비로 1만원씩 내는 봉사단원들의 평균 나이는 30대 초반. 현대중공업 직원을 비롯해 회사원이 대부분이지만 조리사나 영양사 직업도 있다. “착한 마음씨로 좋은 일을 하다 보니 멋진 직장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허허.” 조 단장은 덩치에 안 어울리게 수줍은 듯 웃어 보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 단체에 이름을 올린 전·현직 단원은 50명 남짓. 그중에는 정회원도 아니면서 봉사단이 부르면 군말 없이 달려와 발품을 팔거나 재능을 기부하는 40~50대 선배들도 더러 있다. ‘사랑의 짜장면’으로 벌써 세 차례나 동구 어르신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드린 도진영씨(47· 남구 야음동 중국집 경영)도 그런 선배. 그러다 보니 동지애 하나만큼은 다른 단체에 뒤지지 않는다.

 

2017년 여름 방어진 슬도 방파제에서 쓰레기 치우기를 마친 단원들. 사진제공=울산동구청년봉사단
2017년 여름 방어진 슬도 방파제에서 쓰레기 치우기를 마친 단원들. 사진제공=울산동구청년봉사단

술·담배 통째 버리고 간 피서객도

봉사단원들에게 올여름은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값진 교훈도 얻은 절호의 기회였다. 단원들은 이번 봉사의 초점을 ‘피서지 청결’에 맞추었다. 조선해양축제가 열린 7월말~8월초에는 일산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마대를 들고 대왕암공원, 명덕저수지, 시장통을 안 가리고 샅샅이 뒤졌다.

“쓰레기를 80kg들이로 적을 때는 2~3마대, 많을 때는 8~9마대나 치웠습니다. 해초나 플라스틱조각 말고도 폭죽용 댓가지와 담배꽁초가 의외로 많이 나왔고, 심지어는 깨진 술병도 발에 밟혀 놀랐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언제부터 이렇게 없어졌나 싶어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조 단장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뚜껑도 안 딴 술병이나 담배를 통째로 버리고 간 피서객도 더러 있습디다. 동네 어르신 한 분은 아침나절 해수욕장 민원봉사실 근처에서 만날 때마다 주운 것 있으면 자기한테 달라고 졸라서 가져가기도 했고요.”

피서가 막바지에 접어드는 8월 7일부터 9월 2일까지 매주 월·수·금에는 구청에서 추천해준 동구 대송동의 어려운 이웃 40세대에 반찬과 간식을 나누어줄 참이다. 봉사 횟수가 거듭되는 사이 든든한 후원자도 생겼다. 빵이나 김치 같은 먹을거리를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푸드뱅크도 그중의 하나. 이월상품을 무료로 기증해주는 .의류가게도 빼놓을 수 없다.

심폐소생술로 3세 여아 살린 선행

“나눔장터 같은 곳에서 전을 차려놓으면 가격이 5천원인데도 1만원이나 주시고 가는 분들도 있습디다. 제 얼굴이 제법 많이 알려져서 그러나 보다 하고 생각할 때가 있지요. 보디빌딩 학생선수 때 상을 타서 TV에 좀 알려진 덕분도 있겠지요.”

돌이켜보니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난해 5월 17일 아침나절 동구 전하동에서 ‘호흡정지로 사경을 헤매던 3살짜리 여자아이의 목숨을 신속한 심폐소생술로 구해 미담의 주인공이 되었던 이가 다름 아닌 조재현 단장이다.(2018.5.20. 울산제일일보 보도)

동구청년봉사단에서 바자회 같은 것을 수시로 열어(연 6~12회) 장만한 기금으로 김치를 담가 나눔 실천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계절행사처럼 굳어져 버렸다.

평소에는 100~200포기를 담그다가도 작년 12월에는 400포기나 담가 편모나 소년소녀가 가장노릇을 하는 어려운 가정에 작은 힘이 돼주기도 했다.

봉사활동은 방범, 급식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다양한 편. 때로는 다른 봉사단체를 도우러 나갈 때도 있다. ‘품앗이 봉사’인 셈이다.

지난 6월 28일 동구노인복지관에서 울산동구청년봉사단이 ‘행복나눔 경로잔치’를 개최한 가운데 참여 단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28일 동구노인복지관에서 울산동구청년봉사단이 ‘행복나눔 경로잔치’를 개최한 가운데 참여 단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단순한 봉사 그 이상의 것 구상”

조재현 단장은 요즘 새로운 구상에 젖어 있다. ‘단순한 봉사’ 개념에서 벗어나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봉사’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 그러던 차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동구 방어진에 태어나 일곱 살 때 부모를 따라 이사 가서 그 뒤로 죽 부산에 눌러앉은 천영배 선생(72·부산진구 성지로 72번길 17-1)을 지난 1일 그의 옛집(동구 북진6길 12-9)에서 조우한 것. 천 선생은 이날 난생 두 번째로 자신의 고향집을 찾아 나섰고, 조 단장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었다.

“저도 나이가 어려서 뒤늦게 안 일이지만 천영배 선생의 집안은 우리 동구 주민이라면 절대 잊거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모친이 방어진 출신 독립운동가 서진문 선생(1900~1928, 일본에서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다 모진 고문 끝에 순국)의 외동딸 서정자 여사(올해 95세)이고 부친은 몇 해 전에 작고한 천재동 화백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일본에서 일왕 즉위식을 앞두고 일경의 예비검색에 걸려 일왕 암살 미수 혐의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는 서진문 선생의 묘소는 동구 화정공원에 모셔져 있다.

딱하고 불편한 독립운동가의 유족

조 단장이 서진문 선생의 일대기에 최근 비상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성씨가 ‘영양 천씨’인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재선 지방의원인 조 단장의 어머니 천기옥 여사는 현재 울산시의회 교육위원장 직을 맡고 있으며 서정자 여사의 맏아들인 천영배 선생과는 구면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독립운동가 서진문 선생의 따님이신 서정자 여사를 부산 초읍 자택으로 한 번 찾아뵐까 합니다. 제가 듣기로 서 여사는 고령에다 몸도 불편하시고 집안형편도 안 좋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받드는 일 못지않게 살아있는 독립운동가의 유족을 따뜻하게 돌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실 천영배 선생의 자택 대문에는 국가보훈처에서 발급한 <독립유공자의 집> 팻말이 붙어 있지만 가세가 기운 탓인지 서정자 여사의 여생은 그리 평안하지가 못하다. 조 단장은 천영배 선생의 뜻에 따라 천재동 화백 또는 천씨 부자의 작품전을 그들의 고향 방어진 옛집 언저리에서 마련하는 일로 요즘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가능하다면 작품을 소장·전시할 기념관을 짓는 일에 힘을 보태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물론 ‘울산동구청년봉사단’ 이름으로….

지난 6월 26일 동구 전하동 다오래식당에서 지역 어르신들에게 국수를 대접하고 있는 조재현 단장(가운데).
지난 6월 26일 동구 전하동 다오래식당에서 지역 어르신들에게 국수를 대접하고 있는 조재현 단장(가운데).

 

“결혼은 대학 강단 선 뒤에 생각”

일산초등학교를 거쳐 방어진중-방어진고교를 차례로 나왔다. 울산대학교에서 운동건강관리학과과와 식품영양학과를 복수전공한 덕분에 대학 졸업장이 2가지나 된다. “그만큼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는 게 그의 회고담이다. 하지만 학구열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용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체육교육학)에 이어 박사과정(영양생리학)까지 이수한 것.

장래의 꿈은 대학 강단에 서는 것. 그때까지는 결혼도 접어두겠다고 했다. 조재현 대표는 동구 일산동에서 30년째 귀금속상을 하는 아버지 조현주(59)씨와 어머니 천기옥(55) 시의원 사이에 태어난 장남. 2살 아래 여동생 재향(29)씨와 함께 네 식구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취미는 각종 스포츠와 등산, 그리고 독서. 고교~대학 시절 5년간은 보디빌딩 울산시 대표선수를 지내기도 했다. 고교 때는 YMCA 주최 전국 보디빌더 대회에 고등부 75kg급에 출전, 1등의 영예를 거머쥐기도…. 어머니를 따라 화정동의 ‘갈빛동산교회’를 주로 찾는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장태준 기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