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각사와 일연스님 그리고 삼국유사
인각사와 일연스님 그리고 삼국유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8.0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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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상주 간 고속도로 군위에 ‘삼국유사휴게소’가 있다. 이는 근처 어딘가에서 《삼국유사》가 태어났다는 얘기가 된다. 이 도로가 개통된 지 2년이 조금 더 지났는데, 울산에서 서울로 갈 때나 중부내륙 또는 중앙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대구를 거치지 않아서 10분 이상 단축된다. 마침 다달이 참여하는 ‘64연합동기회’의 지난 6월 하순 산행지가 군위군 아미산이었다. 그때 안내자가 산에 오가는 도중에 ‘인각사’라는 절이 있고, 그곳에서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정보를 일러주었다.

아미산 산행을 마치고 인각사로 갔다. 절의 왼편으로 화산의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있고, 그 기슭에 내(위천)가 흐르고 있었다. 건물 배치나 조경이 뭔가 좀 어수선하고 짜임새가 없어 보였다. 다만 탑이나 불상, 비각 등이 흩어져 있고, 발굴하면서 모아놓은 주춧돌들로 미루어 옛 인각사의 전성기 때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인각사는 원효에 의해 창건되었다가 보각국사 일연(1206-1289)이 주석으로 있던 고려 말에 가장 번성했고, 조선조에서는 쇠퇴했으며, 지금은 겨우 절의 명맥만 유지한 채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경내 전시관에 들어서자 눈이 번쩍 뜨였다. 반갑게도 인각사 연혁과 일연스님 일대기, 《삼국유사》 편찬과정, 그리고 그 책이 갖는 의미와 약술한 내용 등 천금같이 귀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책에서만 보고 들었던 《삼국유사》가 약 700년 전에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2008년, 절터 발굴과정에서 찾아낸 ‘청동정병(주전자), 청동이중합(사리함), 청동반자(북), 청동그릇, 청자, 금동병 향로, 금동 향합’ 등도 천오백년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었다.

경내의 일연스님 비(碑)는 탑과 더불어 보물 제428호로 지정되었다. 이 탑비는 스님 사후에 제자인 ‘법진’에 의해 세워졌는데,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은 4천65자의 비문이다. ‘죽허’가 진나라까지 가서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원래의 비는 금석학의 최고봉이나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었다. 다행히 오대산 월정사 등 여러 곳에 탁본이 남아있어 2006년에 비를 복원하였다. 고승으로, 불교학자로, 역사가로, 저술가로, 문학인으로, 지극한 효자로서의 스님 생애는 물론 172명의 선사와 문도들을 기록하고 있다.

일연 대선사가 살다간 시대는 역경의 연속이었다. 무신들의 발호와 몽고군의 침략, 원나라의 지배 등 총체적 난국을 몸소 경험하면서 고뇌가 무척 깊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팔만대장경 판각 제작에 힘썼고, 수십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불교지도자와 사학자로서의 자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마지막 헌신은 고향 인근으로 내려와 77년을 홀로 사신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인각사를 중창하고, 필생의 과제였던 《삼국유사》를 완성하게 된다. 인용한 136종의 책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오랜 기간에 걸쳐서 준비해왔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삼국유사》 번역본을 25년 만에 다시 집어 들었다. 번역자의 표현대로 이 여름에 ‘가락국기’가 담겨 있으니 ‘삼국여행’이 아닌 ‘사국’의 독서여행 길에 오르고자 한다. 1145년에 발간된 《삼국사기》는 김부식 등 11명이 집필한 정사(正史)이다. 반면에 《삼국유사》는 165년 전의 《삼국사기》가 놓치고 있는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遺事)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이다. 혹자들은 불교문화사로 분류하거나 ‘야사’라는 형식을 차용한 황당무계한 이야기라고도 하지만 이는 책에 깔려 있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삼국유사》는 5권 2책에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편 <왕력>은 환웅, 주몽, 해모수 등 나라 세운 이야기를, 2편 <기이>는 만파식적이나 역신을 감화시킨 처용 등 기이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3편 <흥법>은 불교가 흥성하는 과정을, 4편 <탑상>은 탑이나 불상을 조성한 사실을 기록했다. 5편 <의해>는 신라의 고승들이 보여준 뛰어난 행적을, 6편 <신주>는 불교와 무속 융합 등을 적었다. 7편 <감통>은 불심이 남달랐던 사람들의 기적을, 8편 <피은>은 홀로 불법을 닦은 승려들의 행적을, 9편 <효선>은 인과응보의 결합을 통한 효행 사례를 적었다.

《삼국유사》가 갖는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 고조선과 단군 이야기를 최초로 기록해 5천년 역사가 비롯되었고, 전설 속으로 사라지고 말 가야를 기록했다. 이두로 쓰인 향가 14수를 수록하여 국문학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삼국유사》는 또 신화와 설화를 최초로 문자화했다. 이는 일연스님이 많은 사료를 수집하고 인용하여 고려 후기에 급부상한 단군 신앙과 동족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 여름에 일연 대선사를 만나려거든 인각사로 가보라. 《삼국유사》를 만나 독서여행을 하려거든 서점으로 가라.

이정호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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