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 간
순 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1.21 2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초를 몇 백 만 분의 일로 쪼갠 극 미세 점을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게다. 2008년 한 해가 긴 것 같지만 수 십억 년의 지구 역사와 비교하면 눈 깜짝 할 사이 일 뿐이다. 인간은 그런 짧은 점 속에 살고, 죽고 기억되며 행, 불행을 겪게 된다.

조선 21대 임금인 영조가 하루는 손자인 세자 이 산을 불러 이것저것 얘기 하다가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자치통감 강목을 읽는다고 하자 “왜 하필이면 강목인가?”하며 언짢아했다.

자치통감 강목은 송나라 주희가 쓴 역사책으로 영조의 태생 몇 등극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기록돼 있어 영조가 무척 싫어하는 서적이었다. 궁중 나인 중에서도 최하위 직인 무수리 출신이 자신의 생모임에 대해 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 이였을 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강목을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읽은 탓에 당황한 나머지 엉겁결에 “강목의 일부는 접어 두고 읽지 않는다”고 세자가 말해 버렸다.

세자 방에 가서 읽던 강목을 가져오라고 영조가 지시하자 세자는 사색이 됐다. 그러나 순간이 인간을 살리기도 하고 죽일 수도 있는 부분이 나온다.

궁인이 세자 방에 와서 “세자께서 읽으시던 강목을 달라”고 하자 세자 시강원 설서 -요즘으로 치면 개인 과외교사-였던 홍국영에게 ‘순간’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영조가 자치통감 강목 중에서 특히 싫어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 부분을 접어서 책을 보냈다. 죽을 줄 알았던 정조가 할아버지로부터 “역시 내손자”란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알고도 남을 만 하다.

그 짧은 순간 때문에 홍국영은 정조가 즉위 한 뒤 승승장구 세도를 부리며 여동생을 후궁에까지 앉힌다. 그러나 순간만큼 짓궂은 ‘눈 깜짝할 새’ 없다. 여동생 원빈 홍씨가 의문사 하자 중전 효의 왕후를 의심한 홍국영이 독살을 기도하다 발각돼 강원도로 위배됐다가 34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최근 방영됐던 사극 「이산」을 재미있게 보면서도 ‘순간’의 교훈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성싶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시도 하다가 선거 직전에 무산된 적이 있었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혹자는 정몽준 씨를 “순간의 판단 착오로 차기 대통령 자리를 놓쳤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순간’은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만일 당시에 단일화가 성공했고 이어서 현재처럼 노무현 정부가 집권해서 현 상황에 이르렀다면 정몽준 의원의 존재는 지금 어떨까?

모르긴 해도 미국특사 자격으로 부시를 만나는 작금의 상황과는 많이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한나라당 내부에서 분당 얘기가 나온다는 전언이 있는데 승리도 패배도 한 순간 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꽤나 있나 보다.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