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東夷)족’ 유감
‘동이(東夷)족’ 유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30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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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에 한 재야사학자가 사)한배달 시민강좌에서 ‘우리는 동이(東夷)민족이다’는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삼국사』(‘삼국사기’는 잘못된 표현)와 중국 『25사』의 기록을 근거로 우리나라 삼국(고구리, 백제, 신라)이 한반도가 아닌 중원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밝힌, 매우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나로서는 ‘동이민족’이라는 우리 겨레의 이름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강사에게 문제를 제기했고, 그 후부터는 ‘우리(右夷) 민족’으로 바뀌었다. 오늘은 이 ‘동이족’에 대해 잠시 산책해 본다.

현재 많은 재야연구가나 학자들이 우리 겨레를 ‘동이족’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이 동서남북의 자기 주변 겨레들을 ‘오랑캐(四夷)’라 불렀는데, ‘이(夷)’자는 원래 ‘오랑캐 이’자가 아니라 ‘큰 활(大弓) 이’ 또는 ‘사람 이(人의 옛글자)’자이니 동이(東夷)는 ‘동쪽에 사는 큰 활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서, 맥궁(貊弓) 등 우리의 문화가 앞선 것을 부러워해서 중국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라는 식으로 자위한다.

그런데, 단국대학 기수연 박사가 중국 사서(史書) 속의 동이열전을 연구한 학위논문에 따르면 동이(東夷)는 중국 한(漢)나라 때까지는 중원의 동부 연안지방에 살던 이민족(非華夏係)을 지칭하다가 진(秦)나라가 통일을 하면서 이 지역 사람들은 진 제국에 흡수되고, 그 후 동이(東夷)는 동북방의 이민족을 지칭하는 것으로 개념과 위치가 바뀌었다. ‘사이(四夷)’도 진나라 이전(先秦)에는 막연히 주변의 이민족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다가 후한 시대의 『논형』에서 처음으로 남만(南蠻), 북적(北狄), 동이(東夷), 서융(西戎)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동이(東夷)’라는 말은 우리 스스로 붙인 것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이 붙였다. 따라서 ‘夷’자의 의미도 그들이 오랑캐라 생각하고 붙였으면 그런 의미인 것이지, 그 이름을 붙이지 않은 우리가 ‘오랑캐라는 뜻이 아니고 大弓이란 의미’라고 해석하려는 것은 의미 없는 자기만족 행위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지나 사람들이 우리를 ‘동이’라고 부른다고 그것을 따라서 우리 스스로 ‘동이족’이라고 부르는 행위 그 자체가 심각한 주체성 훼손이라는 것이다. 내가 30년 전에 ‘동이족(東夷族)’ 호칭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번 산책에서 ‘구한말’ ‘개화’ 등은 일본이 우리를 멸시해서 부른 말이므로 사용을 자제하자고 제의했지만, 우리의 생활 속에는 이런 말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말들을 찾아서 잘 사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의 영문국호를 ‘고유명사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한글 맞춤법을 어기면서 외국인들이 부르는 대로 ‘Korea’라고 부르는 것도 비주체적이다. 대한민국에서 ‘민국(民國)’과 ‘대(大)’를 일반명사로 보고 ‘한’만을 고유명사로 본다면 영문국호는 ‘Republic of Great Han’이 되어야 하고, ‘대한’까지를 고유명사로 본다면 1960년대 월남 파병 당시 월남인들이 우리나라를 ‘따이한’이라고 했듯이 ‘The Republic of Daihan’이라 해야 할 것이다.

또, 과거에 ‘6·25 사변’ 또는 ‘동란’이라고 하던 것을 외국 사람들이 ‘한국전쟁’이라 부른다고 우리가 그대로 따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인으로서야 우리나라에 와서 싸운 것이 그 때뿐이니 그렇게 사용해도 자기들끼리는 의미가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는 수많은 전쟁이 있었으니 우리가 ‘한국전쟁’이라고 하면 그 중 어느 전쟁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이므로 큰 문제가 없다면 외국에서 널리 알려진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홍보에 도움 될 수 있다. 그러나 ‘멸시’ 등의 의미가 깔렸거나 주체성을 저해할 수 있다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는 우리나라 책에 근거가 있는 환(桓; 한이라고 읽기도 함)·한(韓), 또는 배달민족이라고 불러야 한다.

박정학 역사학박사,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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