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통상의 ‘이중고(二重苦)’
한국 통상의 ‘이중고(二重苦)’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3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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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으로 외교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발도상국 제외’ 발언으로 인해 또다시 악재를 맞았다. 일본이 조만간 제2 경제보복 조치를 시행할 예정인 가운데,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지만 한국 통상이 일본에 이어 동맹 미국마저 믿을 수 없게 된 현실이 도래한 것이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이다.

이 모두는 현 정부의 고집스런 외교 및 경제 실정(失政)이 만든 결과란 생각이지만 정치권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교적 발전된 국가가 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무역대표부에 지시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주요 20개국(G20) 가입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의 개도국 지위 또한 위태롭게 됐다. 사실 개도국 지위는 오래된 논란거리였다.

WTO는 개도국을 국제 자유무역질서 내 편입시키기 위해 ‘개도국에 대한 특별대우’를 시행하고 있다.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으면 협약 이행에 더 많은 시간이 허용되고 농업보조금 규제도 느슨하게 적용된다. WTO에서 어떤 국가가 개도국인지 결정하는 방식은 ‘자기선언’이다. 다시 말해 한 국가가 “우리나라는 개도국이다”라고 선언하면 개도국으로 분류된다. 
이 문제는 WTO 도하개발어젠다(DDA) 출범 때부터 논란이 돼 온 쟁점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OECD를 중심으로 개도국 세분화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WTO에서는 개도국들의 강력한 반발로 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WTO 사무국에 따르면 WTO 협정 내 개도국 우대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은 150여 개에 달한다. 

한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할 당시 선진국임을 선언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농업 분야에서 미칠 영향을 우려해 농업을 제외한 분야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개도국으로 남았다. 만약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더는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면 우대조항 역시 적용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개도국이라고 해도 우대조항을 활용할 때 다른 회원국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한국은 이미 농업 부문 외에서는 개도국의 지위를 대부분 활용하지 않고 있어 타격은 제한적일 수 있다.

문제는 ‘농수산물’이다. 한국이 개도국에서 제외되면 쌀 등 고율 관세 핵심 농산물의 보호에서 이전과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개도국일 때는 쌀, 고추, 마늘, 양파, 감귤, 인삼, 감자와 일부 민감 유제품 등을 특별품목으로 지정해 관세감축을 하지 않는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이 되면 이들 고율 관세 핵심 농산물의 대폭적인 관세감축이 불가피하다.

WTO에서 미국이 주장하는 개도국 지위 결정 방법 변경 또는 개도국 세분화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개도국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쉽게 관철되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OECD 회원국이거나 가입 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현행 G20 회원국, 세계은행 분류 고소득국가(2017년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 최소 1만2천56달러), 세계 무역량에서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4가지 기준 중 하나라도 속하면 개도국이 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한국은 미국이 제시한 4가지 기준에 모두 포함된다. 이 때문에 한국은 당분간 WTO 개도국 지위를 유지한다고 해도 미국 측이 단행할 조치에 대비해야 한다.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정부의 향후 대응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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