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ier said than done.” 영어 구어체의 표현으로 “말이야 쉽지”라는 의미이다. 학창시절에 알게 된 표현인데, 그 의미를 새삼스럽게 곱씹어보게 된 최근의 계기를 소개하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복 로터리에서 난생처음 겪게 된 접촉사고가 바로 그 계기였다. 울산 지역의 운전자들이라면 다들 어느 정도 공감하겠지만, 이 ‘로터리’라는 장소는 숙련된 운전자들에게도 상당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곳이다. 필자의 경우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무실을 오가려면 매일 공업탑 로터리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기어이 신복 로터리에서 사고를 겪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대형 트레일러와 부딪친 점을 감안하면, 차량이 일부 파손되는 정도에 그쳐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로터리의 운영방식과 같은 근본적인 의문을 이번 기회에 해소하고 싶다는 일종의 오기가 발동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블랙박스의 영상을 확인도 하고, 사고 현장을 다시 찾아 살펴도 보았으며, 유사하거나 같은 유형의 사고 전례를 찾아도 보는 등 나름의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사견임을 전제로, 필자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먼저 교통안전시설,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노면표시’가 허술해 안전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고 현장을 살펴보면, 로터리에서 빠져나와 남부순환도로 등지로 이동할 때 최소한의 표지 노릇을 하는 노면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좀 더 상세한 사항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살펴 다투어야 할 부분이며, 오늘 지면을 통해서 공유하려는 것은, 이 경우에 어떻게 다툴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즉, 도로와 같은 공공시설 등의 하자 때문에 손해가 발생한 경우 그 책임을 누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물을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먼저 국가배상법 제5조 제1항에 따르면, 도로 등 영조물의 설치나 관리상의 잘못으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까지 확인해도 답은 멀어만 보인다. 국가(국도의 경우) 또는 지방자치단체(지방도의 경우)를 피고로 하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 되지 않겠나 하는 정도의 느낌만 온다.
좀 더 적극적으로 민원을 제기해 본 사람이라면 한 가지 추가적인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시청 민원실 등에 전화를 하면 “도로의 노면표시 같은 것은 지방경찰청 소관이니 민원을 그리로 제기하라”는 안내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 도로교통법 제147조 제1항은 “특별시장·광역시장 등은 도로교통법에 따른 권한의 일부를 지방경찰정장 등에게 위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이 법 시행령 제86조 제1항 제1호는 ‘교통안전시설’의 설치·관리에 관한 권한은 지방경찰청장 등에게 위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소송의 상대방은 도로교통법 제3조 제1항에 따라 안전표지 등 교통안전시설의 설치·관리 의무의 주체가 되는 특별시장·광역시장 등이 되어야 한다. 지방경찰청장 등에 대한 권한의 위탁은 이른바 ‘기관위임’으로서 권한을 위임한 시장 등이 속한 지방자치단체 산하 행정기관의 지위에서 사무를 처리한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경찰청장 등은 사람의 몸으로 치면 손과 발에 불과할 뿐이고, 사람 자체에 해당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여전히 책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렵사리 소송의 상대방을 찾았지만, 실제로 개인이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보험회사로부터 수리비 등 정산이 대부분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에게는 소송을 진행할 만한 손해액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금액을 떠나 도로 관리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차원에서라도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울산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로터리 사고의 위험성을 줄이는 데 조금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면 큰 보람이 될 것이다.
류선재 고래법률사무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