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발 무역 분쟁이 확산일로에 있다. 그 시작점이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인데, 일본은 이를 두고 경제보복이 아니라고 하다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그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불화수소를 수입해서 비밀리에 북한으로 넘겨줬다면서 안보문제로 트집을 잡다가 지금은 꼬리를 내렸다. 이 무역 분쟁의 우려는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당장 수출 우대 품목에서 제외된 반도체 핵심소재 규제 여파와 추가 수출규제가 예고되는 품목, 그리고 한일 무역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다.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큰 타격을 준다. ‘포토레지스트(감광제)’,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세 가지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반도체 핵심소재 3종의 수출규제는 서막에 불과하다. 민간용 전략물자 261개, 비민간용 전략물자 851개 등 총 1천112개가 일본의 전략물자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작기계 설비 부문도 일본 의존도가 40% 안팎에 달하는데, 이는 특히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반도체 소재에 대한 추가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 문제도 거론된다.
이런 시국에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한국인을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것도 일본인이 아닌 한국 학자들의 공동 집필이니 참 싸가지 없는 책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은 ‘낙성대경제연구소’ 핵심들인데, 한때 근현대사 국정교과서 문제로 소란을 피우던 뉴 라이트 계열에 속한다. 이 책이 나오던 날, 박정학 님의 <신친일파 색출해 지원 중단하라>는 글이 울산제일일보에 실렸다. 신친일파로 의심되는 ‘동북아역사재단’ 이야기로서 이들 두 단체 모두 일본 극우파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저자들은 반일 이데올로기를 ‘종족주의’라고 주장한다. 사전에서의 ‘종족주의’는 ‘자신의 종족을 가장 우선시하는 태도나 사상’으로 규정한다. ‘민족주의’는 ‘독립이나 통일을 위하여 민족의 독자성이나 우월성을 주장하는 사상’인 바, ‘종족주의’는 ‘민족주의’보다 더 절대시되거나 협소한 의미로 해석된다. 그들은 우리의 역사와 현재를 극히 편협한 반일 종족주의자로 바라본 것이다. 세간에서는 그들을 일본 1급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가 출연한 ‘일본재단’의 지원을 받아 일본 우파들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보고 있다.
그들이 믿는 것은 데이터베이스다. 한국경제를 수량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통계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경제사에 그치지 않고, 그들만의 역사관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엮어낸 것이다. 책의 서문이 참 발칙하다. “아무런 사실적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친일은 악이고 반일은 선이며 이웃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 이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과 형성, 확산과 맹위의 전 과정을 국민에게 고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바른 역사서다”
대표저자인 이영훈은 한국을 거짓말의 나라로 규정한다. 뿐더러 독도를 종족주의 최고의 상징으로 바라본다. ‘한국 교과서의 역사 왜곡, 일제의 쌀 수탈은 거짓말, 식민지 조선의 경제 성장, 강제징용이라는 허구, 이완용과 군함도 옹호, 대일청구권 협정은 애당초 청구할 게 별로 없다’는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그밖에 ‘을사오적을 위한 변명, 구 총독부 청사의 해체, 친일청산이라는 사기극, 노무현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사업’ 등도 그렇다. 어느 것 하나도 그들의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서만은 예외다.
이영훈은 또 위안부 문제를 종족주의의 아성으로 바라본다. 말하자면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의 핵심이 위안부 문제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관헌들에게 관기(官妓)가 존재했으니 그 연장선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강제연행도 사실이 아니며, 성노예도 아니었고, 근로정신대와 혼돈하고 있으며, 그 숫자도 터무니없이 과장되었다고 말한다. 해방 후 40년간 위안부문제는 없었고, 현 정부가 전 정부의 협상을 뒤집으면서 한일관계를 파탄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미군 위안부 문제는 왜 문제 삼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우리들에게 반일 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수많은 왜구의 노략질과 임진왜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 쌓여온 감정을 어찌 지울 수가 있는가. 그러나 우리는 무조건적 반일이나 배일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일본의 경제력과 기술력도 인정하는 만큼 이를 뛰어넘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무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약에 의해 상호 존중되어야 하지만 아베의 교만은 광기에 가깝다. 이런 판국에 동족을 종족주의 도그마로 몰아가는 작자들이 나타나다니 참으로 고약하기 짝이 없다.
이정호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