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상징, 달항아리·함월산 그리고 강강수월래
지혜의 상징, 달항아리·함월산 그리고 강강수월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2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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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는 어리석음의 반대로 사물의 도리나 이치를 잘 분별하여 실천하는 정신능력을 말하며 ‘슬기’로도 표현한다. 빛, 태양, 달, 흰색 등이 모두 지혜의 상징에 속한다.

달항아리는 한자로 백자대호(白瓷大壺)로 부른다. “조선시대 백자대호(白磁大壺)가 국내 도자기 경매 사상 최고가인 31억원에 낙찰됐다. 백자대호는 조선 말기에 만들어진 대형 항아리다.” (조선일보.2019.6.27)라는 기사를 읽었다. 백자대호는 풍만하고 꾸밈없는 형태와 담백한 유백색이 돋보였다고도 했다. 백자대호가 국내 도자기 경매 사상 최고가인 것은 크기와 희소성 때문이란다. 백자대호가 주로 왕실의 장식품이란 점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달항아리는 으레 선비의 사랑방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떤 의미로 놓이게 됐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런 무늬도 없이 그저 흰 빛깔, 둥근 달 모양의 항아리가 비싼 이유는 뭘까?

함월산(含月山)은 ‘달빛을 품에 안은 산’이라 부른다. 울산에는 중구 성안동, 북구 대안동과 연암동, 동구 화정동, 남구 상개동 등 여럿이 있다. 함월산에는 공교롭게도 백양사, 월봉사 등 사찰이 있다. 달을 품은 산과 불교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함월산을 배경으로 사찰이 건립된 이유가 뭘까?

‘강강수월래’는 정월 대보름날 밤 혹은 팔월 한가위 밤에 해안지방에서 행하는 노래와 무용, 그리고 놀이가 혼합된 성인여자놀이로 알고 있다. 강강수월래는 다양한 접근의 해석이 있다. 기원에 대한 설도 임진왜란, 오랑캐 등 여러 설이 전해진다. 민속 여성놀이의 접근으로 이순신(李舜臣) 장군과 임진왜란 관련 설이 대표적이다. 강강수월래를 왜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임진왜란과 연관 지었을까?

위에 열거한 달항아리·함월산 그리고 강강수월래의 내용의 공통점은 달이다. 이름에 ‘달’과 ‘월’이 등장하기 때문에 알 수 있다. 각각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본 뒤 불교적 접근을 곁들이겠다.

먼저 달항아리다. 달항아리는 도자(陶瓷) 차원에서는 작품이다. 작품은 감상과 장엄으로 활용한다. 왕실에서는 크기가 큰 백자대호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민가에서는 백자대호보다 작은 백자호 즉 달항아리를 찾아볼 수 있다. 민가라 해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체 높은 양반가의 사랑방 혹은 공부하는 선비가의 서재에서만 볼 수 있었던 특별한 물건이다.

다음으로 함월산이다. 함월산은 단지 ‘달빛을 품에 안은 산’이라는 현상적인 표현에 만족해야 할까. 이름에는 정체성이 담겨있다고 할 때 현상만은 아닌 것 같다. 또한 함월산이라는 산명이 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에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산이 달을 품은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좀 더 의미를 둔다면, 동쪽의 산으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쉽게, 자주 볼 수 있어 함월산으로 불렀을 개연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강강수월래다. 강강수월래는 여성들의 원무(圓舞)여서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한다. 만약 전쟁터에서 많은 군중을 동원해서 이러한 놀이를 했다면 상대는 영문도 모른 채 제압당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연출했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전승되고 있는 강강수월래를 임진왜란과 연계시킨 것으로 보인다.

선사가 달을 지혜로 상징하며 찬탄하는 게송(偈頌=불교 시의 한 형식)이 있다. ‘보신과 화신은 허망한 인연이요(報化非眞了妄緣), 법신은 청정하여 광대무변하다네(法身淸淨廣無邊), 천강에 물 있으니 천강에 달이요(千江有水千江月), 만리에 구름 없으니 만리가 하늘이로다. (萬里無雲萬里天)’ 게송에서 보신과 화신은 허망한 것임을 자각할 때 법신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물을 따라 비취는 달로 설명을 더하고 있다.

왕실에서 백자대호를 애장한 것은 백자대호가 분명 백성을 위한 지혜적 판단을 상기시키는 물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양반이나 선비 역시 달항아리를 백성을 위한 지혜 증장(增長)의 도구로 여겨 항상 눈높이에 두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강강수월래 또한 1월 1일의 해맞이, 팔월대보름의 달맞이 등 세시민속놀이 속에 의미를 두어 즐기게 함으로써 백성들도 함께 참여하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다사다난한 세월 속에서 본질은 희석되고 의미는 상실된 채 현상조차 퇴색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지혜는 방일과 게으름이 아닌 부지런함이다. 선비의 책방과 사랑방에 놓인 달항아리를 대신해서 백성들은 지붕 위에 하얀 박을 올려놓았다. 지역마다 달항아리·함월산 그리고 세시민속놀이 강강수월래가 등장한다. 특히 달동, 월평, 삼호동은 울산에서 물과 달이 부각되는 동(洞)이다. 지역 문화원은 이러한 동네를 모델로 삼아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는 동네’, 혹은 ‘슬기로운 마음으로 사는 동네’라는 이야기를 입혀 지역경제 활성화에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통문화의 계승과 새로운 문화의 창달을 주도하는 곳이 지역 문화원의 역할이기에 보태는 말이기도 하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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