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곡 천재동과의 만남
증곡 천재동과의 만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2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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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6월 13일(올해는 양력 7월 15일)이 그의 기일(忌日)이었다.

‘극단 푸른가시’가 ‘중구 문화의 전당’에서 그의 삶을 조명하는 연극의 막을 두 번째로 올린 것은 지난 20일 저녁. 혹자는 일본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를 ‘화백’이라 부르지만 그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짚어본 이들은 그를 ‘예인(藝人)’이라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희곡·연출을 맡아 그의 일대기를 회고 형식으로 꾸민 전우수 극단 대표는 그를 ‘울산출신 영원한 예인’ ‘울산연극의 불씨’ ‘한국의 페스탈로치’라고 호칭하기를 즐긴다.

증곡(曾谷) 천재동(千在東) 선생(1915~ 2007). 안태고향이 울산 방어진인 선생은 12년 전, 50여년이나 예술혼을 불태운 제2의 고향 부산에서 향년 92세로 타계했다. 유감스럽게도, 생전에 증곡과의 대면 기회는 없었다. 울산으로 이삿짐을 옮기던 해(1997년), 선생의 흔적을 귀동냥으로 아주 조금 흘려들었을 뿐이다. 여하튼 대왕암 바닷가를 배경으로 막이 오른 연극 <증곡 천재동>은 ‘예인 천재동’의 인간적 면면과 사무친 고향사랑을 전해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공연 덕분에 덤으로 얻은 것도 있었다. 지인들과의 만남과 방어진 출신 독립운동가 서진문 선생(1901~1928)의 존재감이 그것.

‘함월홀’ 로비에서는 잠시 지인들과 눈인사를 주고받느라 시간을 할애했다. 방어진 출신이면서 분친에 대한 연극을 조언으로 뒤받쳐준 증곡의 큰아드님 천영배 선생(72, 부산 성지로 거주), 지역 원로인 서진길 울산예총 고문과 성주향 여사, 황두환 울산생명의숲 이사장, 연극에 다리를 놓아준 이기우 문화예술관광진흥연구소 대표, 증곡의 반려자인 서정자 여사 역(役)을 열연한 구경영 배우(시낭송가)가 그런 지인들. 또 덤으로 확인한 사실은, 1928년 일왕(日王) 히로히토 암살 시도 혐의로 옥고를 치르다 28세에 생을 마감한 서진문 선생의 외동사위가 바로 증곡이란 점이다.

이날 극중에서는 ‘아, 그랬었지’하고 쓴웃음을 지은 장면도 있었다. 울산시가 광역시 승격 기념으로 마련한 특별전(‘외솔 최현배, 석남 송석하, 증곡 천재동을 위한 3인전’)에 얽힌 실화도 그중 하나. 증곡은 3인전 마지막 날, 전시장 입구의 축하화환 2점(광역시장과 광역시의회의장이 보낸)을 보기 좋게 박살내고 만다. 전시기간 내내 한 번도 ‘코빼기를 안 보인’ VIP 2인의 처사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탓이다. (일부 지역 언론은 이 사실을 지면에 슬쩍 흘리기도 했다.) 증곡 역을 두 차례나 맡은 배우 황성호를 비롯한 출연진의 연기는 대체로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정자 역을 맡은 배우 구경영은 지난해 말 초연후기(初演後記)에서 “많은 대사량을 뛰어난 암기력으로 소화하여 연기로 녹여냈다”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았다. 무거워 보이는 처용탈을 쓰고 무대에 오른 ‘처용랑’은 그 때문인지 대사 전달이 또렷하지 않았고, 아무 몸짓 없이 꼿꼿한 자세로만 일관해 어색한 느낌을 주었으며, 왜구와의 검 대결(칼싸움) 장면은 어수룩해 보이기까지 했다.

울산사투리 억양 속에 간간이 끼어든 서울 말투는 이질감으로 다가올 소지가 있었고, 동서양을 넘나든 배경음악은 증곡의 발자취와는 다소 거리가 먼 것 아니냐는 뒷말을 낳았다. 그러나 전반적인 평점은 합격점이었다는 게 중론이었고, 완성도는 공연 횟수가 거듭될수록 높아지지 않겠느냐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그렇다 해도 실망까지 할 것은 없다. ‘첫술에 배부른’ 일이 그리 흔치는 않은 법이니까….

한 가지, 문화행정당국이 유념했으면 하는 당부의 말이 있다. 천재동·서진문 기념관을 한 울타리에 복합공간으로 꾸며 행정·재정적 지원을 아까지 않는 일이다. 천영배·이기우 두 분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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