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오브 트리스 - 삶, 쓰레기장에 핀 꽃
씨 오브 트리스 - 삶, 쓰레기장에 핀 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18 2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삶이 잔인한 건 근본적으로는 질서나 규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인 즉슨 삶은 늘 예측 불가하다는 뜻이다.

우리 인간들은 선과 악이라는 잣대로 도덕이나 법과 같은 질서나 규칙을 만들어 예측하기 힘든 상황까지 통제하려 들지만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능력의 한계치 앞에서는 결국 좌절하고 만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질서나 규칙을 만들어 모든 안 좋은 상황을 통제하려 드는 것 자체가 어쩌면 주제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인간세상에서의 그런 확고한 질서나 규칙은 이곳 지구만 벗어나도 금세 힘을 잃고 말기 때문. 다시 말해 드넓은 우주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블랙홀이 지구처럼 아름다운 행성을 집어삼킨다고 그걸 악하다고 봐야 할까. 그건 이곳 지구에서도 마찬가지. 사자와 같은 맹수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던 꽃사슴을 잔인하게 사냥한다고 그걸 악하다고 말할 순 없다. 해서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듯하다. 선과 악을 따지기 전에 세상은 그냥 잔인하다. 우주가 끝없이 넓으면 뭐하나. 인간이 마음 놓고 숨 쉴 곳은 드넓은 우주에서 코딱지만도 못한 크기의 지구 밖에 없는데.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이 세상은 인간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다.

단지 대기권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우리 스스로 착각하고 있을 뿐. 사실 그렇다. 전 우주적인 차원에서는 천국과도 같은 행성이지만 이곳에서도 가끔은 지옥도가 펼쳐지곤 한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씨 오브 트리스>에서 주인공 아서(매튜 맥커너히)도 얼마 전에 그걸 겪었다.

영화가 시작되면 굳은 표정의 아서가 일본의 한 공항에 도착한다. 그가 향하는 곳은 후지산 근처 아오키가하라 숲. 해마다 100여명 정도의 자살자가 발생해 ‘죽음의 숲’으로 불리는 곳으로 아서 역시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가는 중이다.

아서가 자살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아내 때문. 조안(나오미 와츠)은 얼마 전 세상을 떴다. 갑자기 암이라는 죽음의 병이 조안을 찾아온 것. 다행히 악성은 아니라는 진단이 내려지면서 아서와 조안은 삶의 희망을 다시 찾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교통사고가 덮치면서 그녀는 결국 세상을 뜨게 된다. 간신히 암을 피했더니 교통사고가 덮치다니.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잔인한 세상 앞에서 삶의 규칙과 질서가 산산이 부서져버린 아서는 자살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일본 아오키가하라 숲을 택하게 됐던 거다.

이쯤 되면 아서와 조안의 사랑이 무척이나 애틋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하지만 <씨 오브 트리스>는 그렇지 않았던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일상으로까지 번진 삶의 지옥도를 그려나간다. 어느 새 식어버린 사랑은 일상과 뒤엉키자 전쟁으로 변해버렸고. 심지어 아서는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다 들키고 만다.

아오키가하라 숲에서 아서는 마찬가지로 삶의 의지가 꺾여 숲을 찾은 일본인 타쿠미(와타나베 켄)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이 와야만 왜 그제야 정말 소중한 걸 깨닫게 될까요?” 그랬다.

아서는 아내에게 암이 찾아오자 그제야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사실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 익숙해지면 지루해지고, 지루해지면 오만해지는 게 인간이다. 일상의 지옥도는 그렇게 그려진다.

타쿠미에 따르면 아오키가하라 숲은 ‘연옥(煉獄)’의 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의 영혼이 잠시 머무르는 장소였던 것. 그는 또 아서에게 이런 이야기도 들려준다. “영혼이 이곳을 떠나면 꽃이 핀다”고. 그랬다. 음산하기 그지없고, 자살한 시체들이 숲 곳곳에 그대로 버려져 있는 곳이지만 죽음의 숲으로 불리는 아오키가하라 숲에서도 꽃은 피었다.

행복은 1t을 가져도 늘 부족하고, 고통은 단 1g에도 몸서리치는 인간이기에 삶은 누구에게나 쓰레기장 같지 않을까. 그래도 이 영화는 동화다. 죽음의 숲과 동화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삶이란 게 그렇다. 그건 늘 쓰레기장에 핀 꽃이 아니던가.

2018년 5월10일 개봉. 러닝타임 110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