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황혼을 꿈꾸며
아름다운 황혼을 꿈꾸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1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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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에 접어든 부부의 이혼과 졸혼 이야기를 주변에서 흔하게 들어볼 수 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연예인들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보다.

세상이 변하고 자존감을 찾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세태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가는 결혼풍토라 여겨진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란 말도 나오고, 하나만 낳아 잘 키우려는 부모도 늘어났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사회활동 증가로 결혼생활 갈등이나 회의적 요소가 한층 증가했다. 또한 “인생은 한 번뿐, 현재를 즐기자”라는 욜로(YOLO)족이 급속도로 느는 추세다. 아이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고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정년을 앞두고 “자식 결혼만이라도 시키고 그만 두겠다”는 기성세대들의 바람은 이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8월이면 결혼 30년을 맞이한다. 11월에 딸을 시집보내고 결혼생활의 반 이상을 떨어져 지내던 아내와 울산에서 동거를 준비 중이다. 결혼 30주년에 시집을 보내니 한 세대가 교체되고 제2의 신혼생활이 시작되는 셈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행복한 가정의 모습들은 대개 서로 비슷하고, 불행한 집의 경우는 그 모습이 각양각색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행복한 가정의 공통점은 가족 간에 사랑이 넘치며 먹고 살만한 적당한 재산이 있고 자식들도 제 갈 길을 잘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막상 합쳐 산다고 생각하니 “황혼에 팽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 오순도순 살 방안을 찾고 있다. 새 집은 북구 송정에 마련했다.

구입 당시에는 웃돈까지 주었는데 지금은 분양가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그림 그리는 아내를 생각하여 산과 호수가 있고 바다가 근처에 있어 택한 곳이기에 미련은 없다. 결혼 전에 약속한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하얀 집은 아니지만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그림을 구상하는 아내 모습을 상상하면 벌써부터 흐뭇하다.

퇴직 후 처음으로 단둘이 제주도와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다. 첫 여행이라 서먹서먹하고 어색한 일도 많았지만 “함께 있으니 좋다”는 아내의 말에 앞으로 함께 동행을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알차고 보람 있게 보낼까?”라는 질문에 대부분 여가활동을 강조한다. 여유가 있을 때 기부하겠다는 생각이 잘못인 것처럼,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여가활동을 시작하겠다는 생각도 잘못이다.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직업활동 이외의 모든 것은 여가활동으로 승화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아내와 함께 여가활동을 통해 그 간의 공백을 메우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능동적으로 살고 싶다. 여유로운 시간을 활용하여 새로운 분야와 세상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며 살 계획이다. 밖에서만 찾았던 행복을 서로의 내면에서 찾아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외부활동을 줄이고 황혼에도 즐길 수 있는 문화활동에 시간을 더 할애하고자 한다. 기타 치며 노래하고 가족 행사에 하모니카와 색소폰 연주도 해보고 싶다.

손주가 태어나면 자식에게 하지 못한 것을 손주와 산책하며 자연과 삶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다. 함께 연도 날리고 종이비행기도 날려보고 싶다. 함께 살다보면 그동안 겪지 못한 일들이 생기겠지만, 아무 갈등 없이 성장할 수는 없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서로가 솔직해질 때 상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신의 고집이나 실수를 인정하고 느긋하게 나아갈 때 다가올 황혼에는 진정한 사랑이 싹트리라 믿는다. 아름다운 황혼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는 데 있다.

김영균 관세법인 대원 대표관세사, 前 울산세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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