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산 주민들이 주인대접 받고 전수관도 있었으면”
“외고산 주민들이 주인대접 받고 전수관도 있었으면”
  • 김정주
  • 승인 2019.07.16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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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규 장인 (울산시 무형문화재 제4호, 옹기장)
허진규 울산시 무형문화재 제4호 옹기장.
허진규 울산시 무형문화재 제4호 옹기장.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명사 6인’에 선정

‘외고산 옹기마을’ 하면 6·25 한국전쟁과 45년 전에 작고한 허덕만 선생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경북 영덕에서 옹기업을 하던 허 선생이 피난 내려온 지 몇 년 후인 1957년, 작심하고 눌러앉은 곳이 이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62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숱한 변화의 바람이 이 마을을 스쳐지나갔다. ‘위키백과’는 ‘한국 최대 규모의 옹기 집단촌’이라 했지만, 마을 안을 지금 들여다본다면 표현을 달리할 게 틀림없다. 무늬만 번드르르할 뿐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마을주민 대부분도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경영난으로 내놓은 영남요업이 얼마 전 울주군 재산대장에 이름을 넘긴 일이 가장 상징적인 사건일 것이다.

그렇다고 희망의 싹이 전혀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역경을 딛고 스스로 일어나려는 주민들의 자조적인 움직임이 이 마을 내부에서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점에 반가운 소식 하나가 이 마을에 날아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손잡고 뽑은 ‘전국 지역명사 6인’ 인명부에 이 마을의 막내 장인 허진규 씨(54,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4호, 옹기장)가 이름을 올리게 된 것. 그는 ‘지역명사’로 일하는 동안 국비 지원으로 ‘외길인생 옹기장인의 40년 옹기 이야기’가 주제인 인생체험 프로그램을 엮어나갈 참이다. 허 장인이 운영하는 ‘옹기골 도예’에서 그를 만난 것은 지난 13일 오전이었다.

1966년 남창역에서 옹기를 내리는 모습.
1966년 남창역에서 옹기를 내리는 모습.

 

6·25로 정착… 옹기장 7인 평균나이 71.3세

외고산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적 기억, 마을 내력, 선배 장인들의 내면세계, 마을주민들의 고민까지 찬찬히 풀어나갔다. 가까이서 보니 꽤나 많이 탄 얼굴이다.

“영덕 사시던 허덕만 어른이 우리 마을에 자리 잡으신 것은 여러 조건들이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근처에 남창역이 있어서 철도로 운반할 수 있고, 땔감 푸짐한 대운산이 가까이 있고, 마을주변에 마사 성분 황토와 전통 토가마(토굴) 지을 흙이 많고, 남창들판에 옹기토가 풍부했기 때문이지요. 또 한 가지. 날씨가 따뜻해서 겨울에도 작업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었습니다. 영덕은 추워서 겨울 작업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창업자’ 허덕만 선생은 1974년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기독교 장로인 허 선생의 큰아들 허병진 씨(67)는 현재 라오스에서 펜션사업과 선교활동을 동시에 하면서 고향마을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장인들로 구성된 ‘울산외고산옹기협회’(회장 서종태)는 그의 도움으로 작년부터 라오스 시장 개척에 힘을 얻게 됐다.

“6·25 전쟁으로 다른 지역 옹기마을은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우리 마을은 그 반대였지요. 피난민수용소 같았던 부산이 큰 시장 노릇을 한 덕분이지요. 그러다 보니 경북뿐만 아니라 울산의 구영, 범서, 웅촌에서도 우리 마을로 이사 오기 시작했습니다.”

허진규 장인과 동시에 울산광역시 무형문화재 4호로 지정된 이 마을 장인은 모두 7인. (무형문화재 8인 중 영남요업 대표 최상일 장인은 수년 전 타계했다.) △서종태(69, 경남요업, 협회 회장) △진삼용(79, 금천토기) △배영화(78, 영화요업) △신일성(76, 일성토기) △조희만(72, 성창요업) △장성우(70, 가야신라토기) △허진규(54, 옹기골 도예) 장인이 그분들이다. 하지만 70대가 절반을 넘고 평균나이는 71.3세다.

1980년대 옹기장인들의 단체사진.
1980년대 옹기장인들의 단체사진.

 


장인 4인 전통고수, 변화적응 3인뿐

허진규 장인은 그래서 걱정이다. 주위의 기대감이 부담감으로 돌아오는 탓이다. “옹기 외길을 걸으신 어르신들에게 창의성이나 ‘좋은 작품’ 기대는 안 하셨으면 합니다. 저는 어르신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장수하시면서 마을을 지켜주시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시다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이 계시기에 우리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재 이 마을의 가구 수는 105가구 남짓. 절반이 옹기업과 유관한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러나 당장은 하루하루가 걱정이다. 전망이 어두운 탓이다.

그래도 한동안은 ‘아주 잘나가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로 기억된다. 전성기에는 가구 수가 지금의 4배 400가구나 되기도 했고, 70년 초엔 외고산 옹기가 남창역-부산항을 거쳐 미국 수출 길에 오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추억의 사진첩에서나 회상할 뿐이다.허 장인은 그 원인을 주거문화와 음식문화, 생활용기의 변천에서 찾는다. “88 올림픽 무렵 아파트 붐도 같이 일어났는데, 옹기 장독이 설자리를 잃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일 겁니다. 또 그 빈자리는 김치냉장고와 플라스틱용기가 메워 나갔고….” 틀린 말은 아니다. ‘전통’보다 ‘편리함’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

장인 7인의 현황도 알 수 있었다. ‘후계자’를 1명씩 두고는 있으나 70대 네 분은 전통을 고수하는 쪽이고, 허 장인과 장성우 장인(가야신라토기 대표) 등 3인은 새로운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큰 항아리보다 생활식기 쪽에 눈을 돌리지요, 10년 가깝다 보니 노하우도 제법 많이 쌓였고….” 허 장인의 말이다. 그는 종지, 찻잔, 막걸리잔, 술병, 밥그릇, 문방사우 등 다양한 생활·장식용품 개발에도 나서 그 수가 3백 가지는 좋이 된다고 말한다. 살아남는 길이 그 길이라는 확신 때문이리라.


“행사 때마다 들러리 신세, 섭섭할 때 많아”

허진규 장인은 ‘나’만 생각하는 법이 없다. 마을 어르신과 주민 모두에 대한 배려의 생각을 한시도 지운 적이 없다. “행사가 있을 때는 더 그렇지만 섭섭할 때가 참 많습니다. 주민이 주인인데도 주인 대우를 받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관 주도 행사가 진행될 때마다 주인이 아닌 들러리 신세로 전락하는 데 따른 섭섭함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온 희망사항 하나가 나이 드신 장인들을 ‘외고산 옹기마을 해설사’로 예우해 드리는 일이다. 이 마을에는 울주군에서 관리하는 옹기박물관과 민속박물관, 옹기아카데미가 있지만 마을주민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혜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관’에서 깊이 고민해야 할 사안이지만 기대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장인이나 주민들이 자립의지에 불을 지피려는 낌새가 예사롭지 않다.

허 장인이 협회를 대신해서, 그러나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몇 달 전 군에서 사들인 영남요업 땅과 옹기아카데미 터, 마을 내 폐선부지의 활용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용역을 맡긴 것으로 압니다. 우리 협회에서는 영남요업 자리에 ‘전수관’이라도 하나 지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후계자 교육도 하고 전시·판매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우리는 필요합니다. 그래야 장인 어르신들 생계도 돕고 자긍심도 심어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60~80년대 활동 모습.
1960~80년대 활동 모습.

 

자립의지 꿈틀, ‘할머니 장담그기’ 주목

허진규 장인의 입을 빌린 협회 차원의 구상은 그의 후계자이면서 동부산대학 생활도예과에 나란히 출강하는 김미옥 소장(울산옹기연구소, 미술학석사)의 구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김 소장은 허 장인과는 또 달리 할머니 30여 분과 마을부녀회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특히 할머니들의 장 담그는 솜씨를 이 마을을 뽐내는 ‘장류문화 체험’ 프로그램에 넣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허 장인의 수상 및 활동 경력은 화려하다. ‘한국기초조형학회 국제공모전 최우수상’을 비롯해 최소한 17차례의 묵직한 수상 경력이 있다. 제2회(2015)·제3회(2016) 대한민국 옹기공모전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6년에는 라오스 국립대학에서 시연하기도 했다. 개인전 6회, 단체전 33회의 전시 경력도 그의 듬직한 자산 중 하나다.

주인의식이 투철한 마을주민과 장인들이 실제로 주인대접을 받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물음표를 남긴 채 외고산 옹기마을을 뒤로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장태준 기자

1960~80년대 활동 모습.
1960~80년대 활동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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