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부정하는 또 하나의 ‘신친일파’
강제징용 부정하는 또 하나의 ‘신친일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7.1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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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본의 ‘군함도’는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가슴 아픈 곳이다. 일제가 우리 영토와 주권을 강탈한 후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이 우리나라 사람 400~600명을 데려다가 강제노동을 시켰고, 이들 중 122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강제노동에 시달린 우리나라 일꾼들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콩기름찌꺼기 등 열악한 식사로 영양실조에 걸려야 했고 갱도에서의 질식사, 가스폭발 등 탄광 사고, 각종 질병 등으로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군함도’라고 불리는 나가사키 항 근처의 하시마 섬은 원래 무인도였는데 전범기업인 미츠비시가 사들여 해저탄광으로 개발했다. 그들이 처음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준다고 속여 데리고 갔으나 나중에는 강제로 이 섬에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의 피해자 여운택·신천수 씨가 1997년 12월 24일 일본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1년 3월 27일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이들은 다시 항소했으나 2002년 11월 19일 오사카 고등재판소가 이를 기각했고, 2003년 10월 9일에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상고 기각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피해자 여운택·신천수·이춘식·김규식 씨는 2005년 2월 28일, 신일철주금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 재판부는 2008년 4월 3일 ‘일본 재판부의 판결이 국내에서도 효력이 있으며, 신일철주금이 옛 신일본제철을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들은 서울고법에 항소했으나 재판부는 2009년 7월 16일 항소 기각 판결을 내렸고 피해자들은 대법원에 상고하고 판결을 기다렸다.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일본재판부의 판결은 헌법의 취지에 어긋나며, 신일철주금은 신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다’는 이유를 붙여 고법 판결을 파기하고 환송하기에 이른다.

재심의에 나선 서울고법에서는 2013년 7월 10일 ‘신일철주금 피해자 1명당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이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이미 3명이 사망한 피해자의 대리인단에서는 이에 따라 올해 1월부터 한국에 있는 일본제철의 자산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판 중이던 2015년 7월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무렵 일본 정부는 당시 유네스코 일본 특별대사였던 사토 쿠니의 발언을 통해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 강제로 노역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것을 밝히고, ‘이런 내용을 알리는 시설을 설치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강제노동’에 대한 언급은 고사하고 안내문 설치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1일에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1965년 한일기본협정에 위배된다’면서 반도체 소재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하여 한일 경제관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일본의 극우 역사단체인 국제역사논전연구소는 7월 2일 유엔의 한 회의실에서 ‘군함도에 강제징용이 없었다’는 내용의 심포지엄을 열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1명당 1억 원씩 배상하라’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일본 정부와 극우단체가 연합해서 대응하는 모양새다. 문제는, 이 심포지엄에 패널로 참석한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각지의 탄광 임금을 조사한 결과 조선인 광부의 월급은 타 직종의 조선인이나 일본인보다 높았다”면서 “노예노동이라는 왜곡된 역사의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는 데 있다. 지난 산책에서 소개한 바도 있지만, 문제의 심포지엄과 발언이, 일본 극우단체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돈으로 매수한 한국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하게 하는 ‘신친일파 양성계획’에 따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학문의 자유가 있으니 그런 연구도 할 수는 다. 그러려면 최소한 재판을 걸었던 피해자들의 주장과 대법원 판결의 근거를 뒤집을 수 있는 명확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 극우파의 개’ 노릇을 한 신친일파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수 국민들이 깨어나 질타하면 앞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다.

박정학 역사학박사·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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